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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보험 인사이트]운전자 핵심 3담보 '어제·오늘 그리고 내일'

  • 2020.06.08(월) 09:30

보험 산업이 침체 국면이다. 산업 성숙기로 인해 신계약 체결 여력이 축소되고 있다. 여기에 대면채널을 통한 신계약이 주를 이루는 한국보험산업에서 코로나19의 여파는 무시할 수 없는 위기다. 이런 와중에 손해보험사는 그나마 숨을 쉴 여력을 확보하고 있다. 소위 '민식이법'으로 불리는 어린이 보호구역 내 13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통사고 발생 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었기 때문이다.

해당 법률 개정과 운전자보험의 관련성은 간단하다. 약관 부책 범위 내 양형기준 3000만원 벌금형 교통사고의 최초 등장이다. 과거에도 도주 및 유기사고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의 관한 법률'로 벌금 양형이 3000만원이었지만 해당 유형의 교통사고는 운전자보험에서 면책된다. 이로 인해 운전자보험의 핵심 3담보 중 운전자벌금의 가입금액이 2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상향되었다. 이를 두고 무조건 과거 운전자보험을 바꿔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손해보험사의 신계약 체결률이 높아지고 있다. 생명보험 전속 설계사도 '민식이법'을 알리고 교차코드를 통해 운전자보험 체결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이런 움직임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일각에서는 부책범위 내 벌금 양형 기준이 증액된 것은 기존 운전자보험 계약을 유지하며, 자동차보험의 '법률비용지원 특약'만을 추가하면 해결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하지만 '법률비용지원 특약'은 해당 자동차보험이 가입된 차량의 운전 중 사고만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공유자동차가 대세인 시기에 보장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또 벌금 3000만원의 확률을 논하는 주장도 보이는데, 법원의 판결 가능성을 보험 산업의 예단하는 것도 위험하다. 물론 신계약 체결만을 위해 과도한 공포를 조장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흔히 운전자보험이라 불리는 보험 상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약관은 공소제기 교통사고 시 경제적 손실을 보전하는 교통사고처리지원금, 변호사 선임비용, 운전자 벌금이다. 각각 교통사고 피해자 및 유가족과 형사합의, 구속수사나 정식재판 등에서 변호사 선임, 벌금 납부에 필요한 비용을 보장 한다. 살펴본 3담보 중 법률 개정 및 약관 변경과 관련하여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하고 각 시기마다 신계약 체결률을 높인 것은 형사합의금과 관련된 '교통사고처리지원금'이다.

2009년 2월 26일은 헌법재판소에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4조 제1항의 위헌이 결정된 날이다. 이전에는 가해 운전자가 자동차보험 대인배상Ⅱ를 무한으로 가입하고 이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 중과실을 원인으로 하지 않거나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은 교통사고에 대해 공소제기를 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식물인간이나 전신마비 등 중상해 피해자를 '형법'으로 보호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소원이 진행되었고 위헌 결정으로 인해 피해자 중상해 사고 시 피해자와 형사합의를 해야지만 가해 운전자에 대한 공소제기가 제한되었다.

이 때문에 과거 운전자보험에서 형사합의금을 보전하던 '형사합의지원금' 약관의 공백지대가 발생했다. 중상해 피해를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2009년 10월 1일 '교통사고처리지원금'이 출시되기 전까지 '중상해 교통사고처리지원금'이란 약관을 급히 만들었다. 꽤 높은 체결률을 보였고 이를 명분으로 가망고객을 만나는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2017년 1월 감독당국이 기존 후청구 약관이던 '교통사고처리지원금'을 선지급으로 변경하며, 또 한 번 높은 신계약 체결률이 기록된다. 큰 금액의 형사합의금을 피보험자가 마련하지 못해 운전자보험에 가입하고도 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여 관련 민원이 급증했다. 이를 바로 잡고자 기존 후청구 약관을 개정하여 보험사가 피해자에게 형사합의금을 직접 지급하는 선지급 약관이 등장했다. 이와 관련하여 대대적인 운전자보험 마케팅이 펼쳐졌고 많은 계약자가 기존 운전자보험을 변경하였다.

이후 사망 사고 등에서 형사합의 시 필요한 금액이 증가하는 경향에 맞춰 '교통사고처리지원금'의 가입금액이 기존 3000만원에서 5000만원, 7000만원으로 증액되었고 현재는 1억원에 이른다. 가입금액 확대 국면마다 기존 계약의 변경을 강조하는 마케팅이 펼쳐졌다. '변호사선임비용'도 기존 300만원 또는 500만원에서 현재 2000만원으로 증액되었고, 살펴본 민식이법으로 인해 '운전자벌금'도 3000만원에 이르렀다.

이처럼 과거 10년만 살펴봐도 운전자보험은 관련법과 약관 개정 그리고 가입금액 확대 등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체결과 해지 그리고 또 다른 신계약이 반복되었다. 계약자 입장에서는 '도대체 운전자보험은 언제까지 변경해야 하는지'가 궁금할 정도다. 만약 오늘 최선이라 생각되는 운전자보험 신계약을 했다면, 이 또한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이런 걱정은 조만간 현실화될 수 있는데,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 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일부 개정안이 발의되었지만 통과되진 못했다. 해당 법률은 1982년 교통사고 가해운전자에 대한 무분별한 공소제기를 막기 위해 제정되었다. 하지만 끊이질 않는 교통사고 발생과 피해자의 고통 등으로 인해 폐지 또는 개정이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만약 21대 국회에서 해당 법률이 개정될 경우 운전자보험은 또 한 번 변경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운전자보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오늘에 이른 변경 과정을 볼 때 가능성은 크다. 다만 과거 사례처럼 신계약 체결만을 위해 과도한 공포를 조장하여 무분별한 해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보험 상품은 관련법과 약관의 개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다른 요인으로 인해서도 기존 계약의 변경 필요성이 대두된다. 하지만 이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공포만을 조장하여 신계약 체결에만 열을 올릴 경우 운전자보험의 핵심 3담보처럼 10년 내 수차례 해지와 가입을 반복해야 한다. 혼란스러운 소비자가 보험 가입과 유지를 거부하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변경이나 해지 후 재가입의 필요성이 발생하더라도 소비자에게 불안감을 주기보단 제대로 된 상품설명을 통해 안심을 제공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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