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페이가 라이선스를 취득했다고 칩시다. 그래서 네이버페이에서 계좌를 연 뒤 해당 계좌에서 페이로 충전하면 3%를 적립해 준다고 해봅시다. 카드사는 수신 기능이 없고요. 시중은행 연 금리는 1%가 채 안 됩니다. 여기 계신 분들 혹하지 않으시겠습니까?"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과 발전방향' 토론회에서 배종균 여신금융협회 카드본부장(상무)이 카드사가 느끼고 있는 위기감을 피력했다. 배 본부장은 "플랫폼 납품업자로 전락할지 아니면 사업자로 거듭날지가 (카드업계의) 변수"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사실상 핀테크와 빅테크 등 IT업체에 초점을 맞춰 디지털금융 정책을 추진하면서 기존 금융권이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카드업계를 비롯해 기존 금융업권은 해당 현상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의 디지털금융 정책은 이달 중순 정부가 핵심 정책으로 한국판 뉴딜을 발표한 뒤 한층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금융당국은 최근 수년간 이른바 디지털 3법을 비롯해 다양한 디지털금융 정책 과제를 추진해왔다. 지난해는 전담 조직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지난 24일에는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혁신방안은 전자금융거래법령 등 개정 방향을 밝힌 것으로, 선불결제 카드로 결제를 일으킬 때 사전에 충전한 금액이 모자랄 경우 하이브리드 체크카드 수준인 30만원 안에서 후불 결제를 허용하는 안이 대표적이다.
권대영 금융위 금융혁신기획단장은 "청년이나 주부 등 금융소외 계층은 금융 이력을 쌓을 기회가 없다"면서 "후불결제를 이용해 금융이력을 축적하면 제도권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고, 선불결제 수단에 충전금이 모자라 결제를 하지 못하는 불편 역시 해소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 선불결제 수단 1회 충전한도를 기존 2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확대하는 안과 전자금융업종 세부분류를 간소화하고 최소자본금 규제를 낮추는 안도 포함했다. 영업 규모에 따라 자본금 및 등록 절차에 특례를 부여하는 스몰라이선스 제도도 예고했다.
금융당국은 올해 하반기 중 해당 방안과 관련한 세부 연관 과제도 발표한다는 설명이다. 하반기 세부 과제에는 금융분야 인증 신원확인 혁신방안과 디지털금융보안 종합방안, 빅테크 규제혁신 및 관리감독체계 등과 같은 구체적 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핀테크와 빅테크 측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는 이날 토론회에서 "핀테크 업권이 기존 금융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모습에 주목해달라"면서 "좁은 운동장(업권)을 넓게 만들어 혁신적 창의적 활동이 더 나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반면 기존 금융업권은 반발했다. 한동환 KB국민은행 디지털금융그룹 부행장은 "디지털 시장 독점 지위에 있는 빅테크가 금융 영역에 진출한다면 여파는 상당할 것"이라며 "디지털 업권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사전에 예상치 못한) 부정적 영향이 나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카드업계 입장도 마찬가지다. 배종균 상무는 "카드사가 역량이 부족해서 고객을 잃어버리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제도 때문에 결과가 달라진다면 해당 제도를 바꾸는 것이 맞다"면서 "고객 접점을 상실할 경우 카드사 입장에서는 존폐가 걸린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혁신 방안에 포함된 후불결제 도입 방안이 카드사 영역을 침범한다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가 아닌 업체에 사실상 카드사가 누리는 기능을 이전한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카드업계 입지가 날이 갈수록 작아지고 있음을 느낀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정부 정책 여파로 가맹점 수수료 수익이 사실상 적자 상태에 빠져 있는 데다 각종 간편결제 업체의 시장 확대로 입지가 작아지고 있는 상황. 카드업계의 지난 2분기 실적은 전년보다는 성장했는데 여기에는 비용 절감 노력에 따른 효과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권대영 단장은 "카드업계가 느끼고 있는 위기감을 잘 인식하고 있다"면서 "여러 정책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혁신은 금융권과 핀테크, 빅테크, 소비자 모두에 해당돼야 한다"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친다면 이슈가 불거질 수 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