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가계의 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다. 각종 자산의 가치가 올라가고, 여기에 필요한 자금의 규모 역시 확대되기 때문이다. 당장 가계의 대출 규모가 늘어나는 만큼 가계의 금융자산 역시 늘어나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빚이 많아지는 것과 동시에 쌓아가는 자산도 증가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정부가 가계부채에 대해 경고를 날리는 것은 양이 증가함과 동시에 질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뒤따른 것으로 보인다. 부채를 가계가 잘 갚아나갈 수 있는 환경이 지속된다면 모르겠지만, 이를 담보할 수 없어서다. 이른바 금융불균형 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높다는 진단이다.
고승범의 한마디로 정의 가능한 가계부채 진단
현재 가계부채에 대한 상황은 고승범 금융위원장(사진)의 말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앞으로 가계가 대출을 받을 경우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 내에서 대출받는 관행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즉 현재는 가계가 상환능력을 초과해 대출을 받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당장 가계의 대출 상환 능력을 보여주는 국민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것이 고승범 금융위원장의 판단 근거가 된다. 국민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가계가 버는 소득으로 부채를 얼마나 갚아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를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2011년 152%였던 것이 10년 사이 50%나 늘었다. 즉 가계의 소득이 늘어나는 것에 비해 가계 빚이 더욱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가계가 소득보다는 대출에 의존하는 비중이 더욱 높아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가계가 대출을 갚아나가는 과정에서 소득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소득의 일부가 이자 명목으로 매달 고정돼 지출되기 때문이다. 헌데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대출량이 많아지면 그만큼 가계의 이자부담은 더욱 커지게 된다. 가계부채의 질이 하락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불균형 가능성도 문제
가계가 대출을 받아 자금을 투입한 곳이 가격 변동성이 클 것으로 전망되는 자산시장에 쏠려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른바 금융불균형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사진) 역시 현재 가계부채에 대해 "금융불균형 위험이 커졌다"고 진단한 바 있다.
금융불균형이란 시장에 풀린 돈이 내수 증대에 사용되지 않고 낭비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요약 가능하다. 이일형 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이러한 금융불균형에 대해 "레버리지 확대로 일부 금융자산 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하는 경우인데 차후 금융부채 비용가 금융자산 수익간 불일치로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일형 위원의 진단처럼 현재 금융부채는 부동산, 주식시장 등으로 투입되며 가격상승을 이끄는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이른바 '영끌'과 '빚투'다. 전체 가계대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은 각종 규제에도 불구하고 그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어서다.
주식시장 역시 코로나19라는 경제침체 요인이 길어지고 있는데도 연일 호황이다. 코스피 지수는 올해 들어 역대 최고 수준까지 올랐는데, 여기에는 주식시장에 급격하게 자금이 유입된 것도 하나의 이유로 꼽힌다. 당장 증시 대기자금은 71조원에 달한다. 주식시장 거래를 위해 준비된 금액이 71조원이라는 얘기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상승세가 유지된다면 투입된 부채가 투입된 자산의 수익률이 이를 상충시킬 수 있다. 문제는 가격이 하락세로 접어들었을 때다. 가계의 부채가 투입된 시장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투입된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당장 '자산시장 거품론'이 하나 둘 제기되고 있는 것이 이러한 금융불균형의 위험도를 설명하는 중요 근거 중 하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현재 부동산 시장에 대해 "주택가격 고평가 가능성과 주택가격 조정시 영향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집값이 과도하게 상승, 앞으로 부동산 분야 취약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주식시장의 경우에도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거품이 있으며 일부 해외 전문가들 역시 "거품 붕괴가 머지않아 우려스럽다"는 의견을 점차 개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