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의 해외수주가 더욱 힘겨워지고 있다. 과거 텃밭이던 중동에선 더 이상 예전만큼의 발주 물량이 나오지 않을뿐더러 국내 기업들의 저가 입찰 경쟁으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는 등 크게 데인 경험도 있다.
이에 단순 도급 위주의 수주에서 벗어나 시장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투자개발형(PPP) 사업 수주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투자개발형 사업은 개발도상국에서 발주가 많아 금융지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의 수출입은행 대외채무보증 여력 확대도 이같은 상황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무역보험공사 노조의 반발로 제동이 걸렸다. 정책 추진 동력은 감사원 결과에 따라 향방이 결정될 전망이다.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노조가 4월로 예정된 감사위원회에 주목하는 이유다.
첨예한 대립, 감사원에 달렸다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수출입은행 대외채무보증 여력 확대 방안은 수은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역보험공사 노조가 정책 결정 배경이 된 해외수주 무산 사례가 허위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반대하고 있어 추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 역시 금융지원 수요 대응을 위해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의 협업을 강화하고 긴밀한 사전협의로 금융지원조건 경쟁력을 높인다는 계획이었던 만큼 무역보험공사 노조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다.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밀어붙이기 힘든 이유다.
수출입은행 노조는 해외수주 프로젝트 무산 사례는 허위가 아니라는 점을 감사원에 충분히 소명했다는 입장이다. 관련해선 감사원에 탄원서도 제출하는 등 적극 대응하고 있다.
수출입은행 노조 관계자는 "정부가 예시로 들었던 프로젝트는 우리가 진행했던 내용이라 정확히 알고 있고, 감사원에 소명자료를 제출했다"며 "감사원 결과를 보면 알 것"이라고 자신했다.
무역보험공사 노조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설사 감사원 감사에서도 해당 프로젝트의 허위 여부가 명확히 판명되지 않을 경우 고발 등을 통해 법적인 판단을 받겠다는 계획이다.
무역보험공사 노조 관계자는 "플랜B(허위가 아니라는)는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애매모호한 결과가 나온다면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절차를 진행해서 끝까지 가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당 내용을 추진했던 기획재정부 등은 난처한 처지다. 기재부 역시 감사원 결과를 지켜본 후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 관계자는 "해외수주 지원방안은 관련 부처를 비롯해 양 기관도 참여해 상당 기간 협의한 내용"이라면서도 "감사원 결과를 봐야겠지만 어떻게 나올지 예단하기가 쉽지는 않다"고 토로했다.
힘겨운 해외수주, 금융지원 절실
정부 정책이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노조 대립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의 해외수주 환경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수주는 306억달러로 전년대비 12.8% 감소했다. 해외수주 규모는 2019년 바닥을 찍은 후 반등하는 듯 했지만 1년 만에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중동 플랜트 등 단순 도급 수주에 주력했지만 최근에는 프로젝트 대형화와 투자개발형 사업 확대 등 수주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특히 투자개발형 사업 수주를 위해선 금융지원 수요 대응을 통한 경쟁력 강화가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손태홍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개발도상국 등 대다수 프로젝트는 투자개발형 사업으로 기업들 입장에선 해당 사업의 안정성 등을 위한 금융지원이 대단히 중요하다"며 "아직 국내 기업들의 수주 가운데 투자개발형 사업 비중이 크지 않지만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지원은 기업이 할 수 없어 정부가 나서야 하는 영역"이라며 "단기간 가시적인 성과를 내긴 어렵겠지만 지속적으로 금융지원 확대로 경쟁력을 높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수출입은행이 대외채무보증 여력 확대를 강조하는 이유와도 맥이 통한다. 수출입은행 노조 측은 "금융 옵션을 다양화하면 우리 기업이 수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미래지향적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무역보험공사 노조는 금융지원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수출입은행 대외채무보증 여력 확대가 경쟁력 강화 방안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무역보험공사 노조 측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주 확대 방안은 필요하다"며 "하지만 수출입은행 대외채무보증은 수주 확대가 아니라 그들의 영역을 확대하려는 것이라 해외수주 경쟁력 강화에는 도움되지 않는다"라고 반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