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역대 최대 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새 정부가 내건 첫 경제 대책인데, 다급해진 '물가 잡기'와 부딪힐 수 있어서다.
정부는 59조원 규모의 추경을 통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방역조치로 손실을 입은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보상을 지급하고 취약계층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최근 커지고 있는 물가 상승 압력이 더해질 수 있다는 부담도 있다.
이에 더해 미국 물가도 예상보다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통화 긴축에 힘을 싣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물가 상승 대응을 위한 금리 인상 압박이 더욱 커지고 있다.
경기 회복이냐 물가 압력이냐
정부는 지난 12일 국무회의를 열고 59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의결했다. 코로나19 방역조치로 손실을 입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온전한 손실보상'을 하기 위해서다.
이번 추경을 통해 자영업자‧소상공인 370만명에 1인당 최소 600만원 이상 보상이 이뤄질 전망이다. 당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선 구체적인 손실보상 규모를 밝히지 않으면서 논란이 커지자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공약 이행(자영업자‧소상공인 600만원 보상)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 추경안을 마련했고, 13일 국회에 제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16일) 국회를 찾아 첫 시정연설을 갖고, 이른 시일 내 추경이 확정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보상을 받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또 내수 시장에 돈이 풀리면서 소비를 촉진해 경기 부양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경제의 비약적 성장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최근 커졌던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반면 물가 상승 압력은 더해졌다는 점은 정부의 부담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중국의 봉쇄 등 영향으로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등 물가 상승은 세계적 추세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추경을 통한 대규모 자금이 시장에 풀릴 경우 물가 상승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 정부도 이 같은 우려에 공감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조찬 회동을 갖고 긴밀한 정책 공조를 이어가기로 했다. ▷관련기사: '고물가 엄중'…한은도 '빅스텝' 가능성 열었다(5월16일)
추 부총리는 "추경이 물가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전혀 없지는 않다"면서도 "추경으로 생활이 어려운 취약계층 많은데 이들의 실질 소득을 받쳐주는 것도 경기 대책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 부담에 이창용 총재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 총재는 "(금리인상은) 앞으로 물가가 얼마나 더 오를지 데이터를 보면서 판단할 시점"이라며 "5월 금융통화위원회 상황과 7~8월 물가 변화 등 물가 성장률을 보고 판단이 가능하겠지만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배제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미국 물가도 시장 예상 웃돌아
국내 경제에 밀접한 영향을 주는 미국 상황도 부담스럽다. 미국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289.11로 전년보다 8.3% 상승했다. 지난해 8월 이후 처음으로 둔화세를 보인 것이 긍정적이다.
하지만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다는 점에서 긴장감은 더욱 커졌다. 당초 시장에선 8.1% 정도 상승을 예상했던 까닭이다. 미국 소비자물가가 정점을 찍은 후 상승률이 점차 낮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4월 물가지수는 그만큼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는 미국 연준의 통화긴축 정책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특히 연준은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 "물가 상승에 대한 위험을 매우 주시하고 있다"고 밝히며 이에 적극 대응할 계획임을 드러낸 바 있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 고용은 호조를 지속 중인 반면 물가는 쉽게 둔화되지 않고 있다”며 “지금은 긴축을 통해 수요를 꺾겠다는 연준 의지를 반박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