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DB손해보험에 3000만원짜리 보험금 신청서가 도착했답니다. 운전자보험에 붙은 '자동차사고 변호사 선임비용 특별약관(특약)'에 대한 청구 건이었죠.
보험금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내부에선 보험사기 가능성을 의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전치 32주 진단을 받아 치료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결국 보험금을 전액 지급했다는 후문입니다.
큰 사고인 만큼 비싼 변호사를 선임했을 거란 판단과 함께 DB손보측에서 뚜렷한 사기 정황을 발견하지 못하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DB손보를 바라보는 손보업계의 시선은 복잡합니다. 왜일까요?
기존 운전자보험의 변호사 선임비용 특약은 경찰 조사가 끝나고 실제 기소 또는 재판, 구속 상태였을 때만 보장됐습니다. 그러나 DB손보의 특약은 기소전 경찰 조사 단계부터 선임한 변호사 비용을 대줬습니다. 이런 유용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의 배타적사용권을 획득했고요.
경찰 조사부터 변호사비 보장…'인기몰이'
인기몰이가 대단했다고 해요. 변호사 선임비용 특약이 포함된 운전자보험이 나온지 한달 만인 지난해 11월 운전자보험 신규계약 건수가 60만3000건을 기록했다고 하니까요. 전월 실적이 39만9000건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려 50% 넘게 늘어난 것이죠.
운전자보험은 자동차보험과 달리 의무보험이 아닌데도 이처럼 단기간에 신규계약이 늘어난 건 흔치 않은 사례라고 합니다.
지난 1월 DB손보의 배타적사용권 기간이 끝나자 경쟁사들이 앞다퉈 보장 범위가 확대된 운전자보험 상품을 내놓은 이유입니다. 기존 가입금액이 2000만원이었다면 최대 5000만원을 보장하는 새로운 특약에 가입할시 최대 7000만원의 변호사선임비용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었죠.
업계 전체적으로 집계하는 인당 가입누적 한도를 없애고 자사 누적한도를 1억원까지 확대하기도 했고요.
13개 손해보험사의 운전자보험 신계약 건수는 △2019년 358만5233건 △2020년552만9148건 △2021년 450만3210여건을 기록했는데요. 2020년 가입자가 급증한 것은 이른바 민식이법(도로교통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이 시행됐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2021년 잠시 주춤했던 운전자보험 신계약 건수는 지난해 492만8692건으로 다시 증가세를 보였죠. 변호사 선임비용 특약의 인기에 힘입은 것으로 업계는 추측하고 있습니다.
판매경쟁, 우려와 기대 사이
과도한 경쟁으로 번질 우려가 커지자 업계에서는 변호사 선임비를 둘러싼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재차 불거지고 있습니다. DB손보에 들어온 3000만원짜리 고액 청구 건처럼 보험금을 매개로 한 변호사비 과다청구나 무작위 변호사선임 등이 이어질 수 있다는 거예요. ▷관련기사 : [인사이드 스토리]변호사가 "보험 가입하세요" 권유한 사연(1월 12일)
물론 한쪽에서는 일부 청구 건만 보고 '침소봉대'해서는 안된다는 쓴소리도 나오죠. 운전자보험은 수익이 많이 남는 상품이고요. 회사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보장범위를 책정해 상품을 팔고 있다는 거예요.
손보사 한 관계자는 "새 회계제도 도입으로 철저한 리스크 관리를 요구받는 상황"이라며 "경쟁과열로 운전자보험이 적자상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과도하다"고 했죠.
하지만 과도한 증액이 일으킬 부작용에 대해선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여요.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7일 각 보험사에 공문을 보내 형사 합의금 및 변호사 선임비용 가입금액 운영 관련 감독행정작용을 안내했습니다. 감독행정작용은 금융당국이 금융사의 법령 준수를 위해 직권으로 필요한 지침을 구체적·개별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뜻합니다.
실제 발생 가능성이 없는 수준으로 가입금액을 확대하고 이에 대한 보험료를 수취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게 금감원의 지적입니다. 올 초 운전자보험 가입시 과도한 특약을 주의해야 한다고 소비자경보를 발령했지만 여전히 불합리한 특약에 가입하는 사례가 늘자 직접적인 조치를 취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