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IFRS17발 보험업계 혼란, 왜?' 에서 계속)
④부채이자 미래 이익인 'CSM'
BEL(최선추정부채), RA(위험조정) 외에 보험사가 보유한 보험계약들 중에는 보험료는 많이 받았는데 보험금은 덜 나가고 그래서 이익이 예상되는 계약이 있을 수 있고요. 반대로 받은 보험료 대비 보험금이 더 나가서 보험사 입장에서는 손실이 되는 계약들도 있겠죠. 일단은 전자 즉, 보험계약 중 미래의 이익이 예상되는 부분을 CSM(계약서비스마진)이라고 부를 겁니다.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CSM은 우선 부채로 놓지만, 발생주의 원칙에 따라 나중에 이익으로 상각하기 위해 잡아두는 계정이라는 점입니다. (충당금 명목인 RA도 여건이 되면 나중에 같이 이익으로 잡힙니다.) 예컨대, 계약기간이 5년인 암보험의 보험료가 1000원(자산)이 들어왔을 때 미래에 나갈 보험금인 BEL을 800원으로 잡고요. 그리고 200원은 보험사 미래 이익인 CSM으로 인식하는 겁니다. 편의상 RA는 0원이라고 둘게요.
그럼 우선 자산과 부채가 동시에 1000원(BEL+CSM+RA)으로 잡히겠죠. 그리고 나서 CSM 200원을 5년 동안 균등상각해 매년 이익으로 인식한다는 겁니다. 40원(1년차)·40원(2년차)·40원(3년차)·40원(4년차)·40원(5년차)으로요.
풀어 설명하면 1년차에는 160원이 CSM으로 남고 40원이 이익이 되는 것이죠. 그럼 첫해 자본 역시 40원이 됩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도 40원을 이익으로 인식해요. 그럼 CSM은 120원이 되겠죠. 2년차의 자본은 80원(40원+40원)이 되고요. 이 과정을 보험계약 기간인 5년간 반복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CSM을 상각하는 과정을 통해 보험사 이익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새 회계제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입니다.
또 짚어야 할 게 BEL과 CSM은 상관관계에 있습니다. 미래에 나갈 보험금인 BEL을 너무 작게 추정(공격적·낙관적 가정)하면 미래 이익인 CSM이 다소 크게 잡히게 되고요. BEL을 너무 크게 측정(보수적 가정)했을 때는 그 반대겠죠. 생각해보면 아까 받은 보험료 1000원중 나갈 보험금(BEL)을 보수적으로 가정해 900원으로 계산하면 CSM이 100원밖에 남지 않으니까요. 반면 BEL을 공격적으로 가정해 700원으로 계산하면? 네. CSM은 300원으로 더 크게 잡히겠죠.
⑤역대급 실적…회계 마법? 이익 부풀리기?
올해 IFRS17이 도입되면서 보험사들의 실적은 부쩍 개선됐습니다. 그러면서 생명보험사들과 손해보험사들의 은근한 신경전이 벌어졌어요.
지난해 기준으로 산출한 CSM을 볼까요. 주요 손해보험사의 CSM이 형님 격인 주요 생명보험사를 모두 앞질렀습니다. 생보업계 부동의 1위사인 삼성생명의 CSM이 손보업계 5위권사인 메리츠화재보다 뒤쳐졌고요. 4위권인 신한라이프(6조7468억원)가 2조원 넘게 교보생명(4조5910억원)을 앞지르는 이변이 나타난 거죠. ▷관련기사 : 새 회계기준 도입하니…보험업계 '지각변동'(4월 18일)
금융감독원이 밝힌 보험사들의 지난해 보험부채 구성요소 비율을 보면 생보사들의 CSM은 9%밖에 안되는데 손보사들은 32.4%까지 나오죠. 손보사들이 CSM을 크게 가져갈 수 있는 상품군인 장기보장성 보험을 중심으로 영업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어요. '뒷말'도 끊이지 않았고요. 따지고 들어가면 "네가 나보다 CSM이 더 나온 이유가 뭐냐"는 질투 섞인 의구심이었죠.
급기야 금융당국은 CSM 산정을 위해 보험사들이 자율적으로 설정한 근거가 합리적인지 점검하기로 했답니다. DB손해보험·현대해상 등이 금감원의 검사 대상이 됐고요. 이후 당국은 지난달 말 재무제표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계리적 가정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사실상 보험사들이 BEL을 너무 낙관적으로 가정하지 못하게 해 CSM을 과대계상하는 걸 막으려는 거였죠. 항목별로는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의 계리적 가정 산출기준 △무·저해지 보험 해약률 가정 산출기준 △고금리 보험 상품의 해약률 가정 산출기준 등이 꼽혔습니다.
이 중 하나를 설명하자면 실손보험에서 갱신 보험료가 과거보다 크게 오를 것으로 기대한 게 문제로 지목됐습니다.
객관적‧합리적 근거 없이 낙관적인 가정을 사용할 경우, 장래 이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될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우려입니다. 실손보험은 지속적인 손실이 예상되는 상품인데도 일부 보험사들이 장미빛 미래를 가정하고 있다는 거죠. 이익을 부풀리기 위해서요.
⑥금융당국의 '뒷북' 대응 아쉬운 이유
사실 가이드라인 제시는 IFRS17의 대전제인 원칙중심(사업비, 해지율 등을 포함한 계리적 가정에 대해 구체적인 산출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 것)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죠. 더욱이 10년간 새 회계제도 도입을 준비하면서 보험사로부터 결산 시점의 숫자도 미리 받아봤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인데요. 논란이 커지니 '보험사 자율에 맡겼더니 비합리적인 숫자를 만들어 왔더라'는 식의 반응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금융당국의 '뒷북 대응'이 일부 보험사들의 강력한 항의에 의한 것이라는 소문은 기정사실화된 분위기입니다. 김용범 메리츠화재 대표가 "CSM이 과장되는 것은 보험사가 실손보험 손해율은 지나치게 낮게, 무해지보험 해지율은 과도하게 높게 쓰기 때문"이라고 이례적으로 당국을 두둔하고 나선 것도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키우고 있어요.
하지만 어찌 됐건 이미 일은 벌어졌고요. 당국도 재무제표의 '신뢰성'과 '비교가능성'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있으니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더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언제나 앞으로의 일이 중요하니까요. ▷관련기사 : IFRS17 준비만 10년…금융당국 여전히 '오락가락'(5월 11일)·'보험사 실적잔치는 오해' 금감원이 나선 이유(5월 21일)
⑦보수적 가이드라인…건전성 지표까지 '흔들'
그런데 금융당국이 제시한 보수적인 계리적 가정이 결국 업계의 수익성과 건전성까지 동시에 하락시킬 수 있다고 해요.
새로 도입된 건전성 지표인 '신지급여력비율(K-ICS·이하 킥스)'은 기존 지급여력제도(RBC)처럼 부채(요구자본)대비 자산(가용자본) 비율인데요. 기존 자산만 시가 평가했던 것과 달리 자산과 부채를 모두 시가로 평가합니다.
이번 가이드라인에 따라 부채 구성요소 중 하나인 BEL에 대한 기준이 더 보수적으로 가정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과소계상한 BEL 규모를 바로잡기 위해서죠. 이 경우 분자에 해당하는 가용자본이 줄어들면서 킥스비율이 내려갈 수 있다는 겁니다. ▷관련기사 : 벨(BEL)이 울리니…보험사 건전성 지표 '흔들'(5월 29일)
대형사들보다는 중·소형사들을 중심으로 위기감이 크다고 합니다. 푸본현대생명·하나생명·NH농협생명 등이 최근 신종자본증권, 후순위채 등을 잇따라 발행하고 있는 게 그 방증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이 앞서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이르면 6월 결산부터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2분기 재무제표에서 보험사들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거겠죠.(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