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한진그룹 경영권 승계 구도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1남2녀를 둔 조 회장이 그룹 지배에 필요한 지분 대부분을 직접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질적 경영권은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승계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일찍이 그룹 내에서 주력인 대한항공 주요업무 후계 수업을 받아왔던 데다, 누나와 여동생은 사회적 물의로 경영 일선에서 떠나 있기 때문이다.
조원태 사장 등 삼남매는 거의 비슷한 수준의 한진칼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조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을 지분을 균등하게 나눌 것이냐는 다른 문제다. 최근 행동주의펀드 등 외부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는 상황도 변수다.
◇ 조 회장 상장사 보유 지분가치 3527억원
조 회장이 보유한 한진그룹 주요 상장사 지분은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 17.84%를 비롯해 ㈜한진지분 6.87%, 대한항공 지분 0.01% 등이다. 이 상장사 지분의 가치는 8일 종가 기준으로 각각 3208억원, 314억원, 5억원 등 총 3527억원이다.
지분 승계의 관건은 지배구조 핵심인 한진칼 지분이다. 조 회장을 포함한 특수관계인이 한진칼 지분 28.95%를 들고 있고 한진칼 등이 다시 대한항공 지분 33.34%를 쥐고 지배력을 행사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진칼 지분은 3세들도 일부 들고 있다. 아들 조원태 사장이 2.34%,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31%,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2.30%다. 대한항공이 인적분할해 한진칼을 만들기 전 증여한 대한항공 지분이 전환된 것이다. 하지만 이 지분만으로는 경영권 행사가 어렵고, 후계자도 가늠하기 어렵다.
결국 조 회장 지분이 어떻게 상속되느냐에 따라 실질적 경영권 승계구도가 결정된다. 재계에서는 3남매중 둘째이자 장남인 조원태 사장이 그룹 경영권을 승계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다만 조 회장이 자녀를 고루 중용해왔기 때문에 물류운송을 제외한 주력 계열사를 제외하고는 사업영역에 따라 계열 분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한진그룹은 과거 조중훈 창업 회장이 4형제에게 그룹을 분할한 전례도 있다. 장남 조양호 회장에게 대한항공을, 차남(조남호)과 3남(조수호)에 각각 한진중공업과 한진해운을, 4남(조정호)에 메리츠금융을 갈라줬다.
그래서 '땅콩 리턴', '물컵 갑질' 등의 사건이 불거지기 전만 해도 한진그룹이 일부 사업을 분리해 3세 경영을 준비한다는 관측이 힘을 받았다. 장녀 조현아 전 부사장은 그룹의 호텔·관광 관련사업을, 차녀 조현민 전 전무는 저비용항공(LCC) 진에어를 각각 몫으로 받게 될 것으로 여겨졌다. [3·4세 승계]⑤한진, 흔들리는 '三分之計(삼분지계)'
하지만 이들 둘이 악화된 여론과 외국 국적 등의 이유로 과거처럼 맡은 사업의 경영 전면에 다시 나서기 어려워지면서 이런 예상은 쑥 들어갔다. 지금껏 균분해 이뤄졌던 지분 승계 구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은 그래서 나온다.
◇ '삼분지계' 깨진 뒤 지분 승계도 안갯속
특히 한진그룹이 행동주의를 표방한 사모펀드 운용사 KCGI(그레이스홀딩스)로부터 지분 견제를 받는 상황이라는 점도 변수다. 30억원 이상 상속세율 50%를 단순 적용하면 조 회장보유 상장사 지분 상속을 위해 필요한 세금만 1800억원 가량이다. 이를 내기 위해 조 회장의 한진칼 보유지분 중 일부를 현금화할 경우 총수 일가 지분율은 20% 초반까지 떨어질 수 있다.
반면 KCGI의 경우 지난달 12.68%였던 지분율을 최근 13.47%까지 끌어올렸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면서 최근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 회장 사내이사 연임을 저지한 3대 주주 국민연금의 한진칼 지분율은 작년말 기준 6.64%다. 만일 조 회장 일가의 지분율이 낮아지고 2·3대 주주가 손을 잡으면 최대주주 지분율을 넘어설 수 있다.
이 때문에 조 회장 보유주식의 상속 및 상속인의 상속세 납부 등의 과정에서 한진그룹 지배구조도 적잖은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세금부담을 최소화하려 한진그룹내 일우재단과 정석물류학술재단, 정석인하학원 등 공익재단 등을 활용하는 방법도 예상 시나리오에 거론된다. 이들 재단에 지분을 넘겨 경영권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공익재단은 특정회사 지분을 증여받을 때 5%까지는 세금이 면제된다.
상속과정에서 이번 주주총회에서 대립한 행동주의펀드 등과의 관계개선 등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이들이 새로운 지배구조 체제에서 일종의 '백기사'로 자리매김한다면 보다 안정적인 체제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 일가의 현금성 자산이나 세 자녀가 계열사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쌓았을 개인 재산 등을 감안하면 상속세 부담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다만 상속 비율이나 사업 배분, 이에 따른 주주 반발 등 승계 과정에 여러 변수들이 돌출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