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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래 판단력이 흐려졌을까…딸의 욕심일까

  • 2020.08.06(목) 10:43

[인사이드 스토리]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집안싸움
조양래, 지분 전량 막내아들에 넘기자 큰딸 발끈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를 계열사로 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에서 경영권 승계를 두고 잡음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6월 조양래 회장이 자신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전량을 막내아들(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에게 물려주자 경영권 승계에서 배제된 다른 자녀가 반발한 것이죠.

최근 조 회장의 큰딸(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자발적 의사에 의해 내린 것인지 판단이 필요하다"며 아버지의 성년후견을 신청했습니다. 조 회장은 "경영권에 대한 욕심이 있는 거라면, 저는 딸에게 경영권을 주겠다는 생각은 단 한 순간도 해 본 적 없다"며 되받아 쳤습니다.

큰딸의 말처럼 아버지는 성년후견이 필요할 정도로 갑자기 판단력이 흐려졌을까요. 아니면 큰딸이 갑자기 경영권에 욕심이 생긴 것일까요. 이 질문에 '힌트'를 찾기 위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끌' 경영권 승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경영권이 승계된 것은 지난 6월26일입니다. 조 회장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23.59% 전량을 조현범 사장에게 시간외 대량매매로 팔았습니다. 주당 매매단가는 1만1150원으로 총 2447억원 어치로 추산됩니다. 조현범 사장의 지분은 19.31%에서 42.9%로 늘며 단숨에 그룹 경영권을 확보했죠.

아무리 대기업 오너이지만 수천억원대 자금을 한 번에 마련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조현범 사장은 자신이 보유한 한국테크놀로지그룹과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주식을 담보로 총 2200억원을 대출 받았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대출 2200억원 중에 주식을 매수한 다음날에 받은 대출 800억원도 포함돼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주식을 산 바로 다음날 새로 확보한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정도로 자금 상황이 넉넉하지 않았단 얘기죠. 이른바 '영끌'로 경영권 승계를 받은 셈입니다.

큰딸 "아빠 결정 당혹" 아빠 "큰딸 괜찮니?"

경영권 승계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조희경(1966년생), 조희원(1967년생), 조현식(1970년생), 조현범(1972년생) 등 조 회장의 4남매 중 큰 딸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지난달 30일 조 회장의 성년후견을 신청한 조희경 이사장 측은 "(조 회장이) 가지고 있던 신념이나 생각과 너무 다른 결정이 갑작스럽게 이뤄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분이 놀라고 당혹스러워했다"고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성년후견은 나이가 많거나 장애나 질병 등이 있어 스스로 의사결정이 힘든 성인에게 후견인을 선임하는 제도입니다. 큰딸이 보기엔 아버지의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본 것이죠.

조 회장은 발끈했습니다. 그는 "조현범 사장에게 15년간 실질적으로 경영을 맡겨왔고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고 판단해, 최대주주로 점찍어 두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저야말로 첫째 딸이 괜찮은 건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라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둘째딸·셋째아들의 선택은?

현재까지 아버지의 결정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든 것은 조희경 이사장이 유일합니다. 하지만 조희경 이사장이 보유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은 0.83%에 불과합니다.

"조양래 회장은 평소 주식을 공익재단 등 사회에 환원하고자 했다"는 조희경 이사장의 말이 눈길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죠. 자신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국타이어나눔재단이 경영권 승계에 활용되어야 한다는 속내를 드러냈다고 해석하면 비약일까요.

관심은 다른 형제들이 어느 쪽에 서느냐 입니다.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과 조희원 씨는 각각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19.32%, 10.82%를 갖고 있습니다. 이 남매가 어느 편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진짜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업계에선 이 남매가 지분을 합치더라도 조현범 사장의 지분과는 12%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는 만큼 섣불리 큰 누나(조희경) 편에 서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반면 이미 다른 형제들이 큰 누나를 중심으로 뭉친 결과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결국 국민연금공단(6.24%) 등의 기관이 보유한 지분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갑자기? 주식 넘기기 딱이네

이번 한국테크놀로지그룹 경영권 승계가 갑작스럽게 이뤄졌지만 시기적으로 보면 '주식을 넘기기 딱 좋은 때'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기와 전방산업인 자동차 시장이 침체되면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주가가 바닥으로 떨어져있기 때문입니다.

지분 승계가 이뤄진 지난 6월26일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주가는 1만1150원이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3월23일 주가가 7490원까지 급락했던 것과 비교하면 회복된 것이지만 3년 전만해도 2만원 넘게 거래되던 주가와 견주면 반값 수준입니다. 3년 전이라면 조현범 사장은 '영끌'로도 경영권 승계를 받기 힘들었을 겁니다.

코로나19 위기를 틈타 지분을 넘긴 곳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뿐만이 아닙니다. 이재현 CJ 회장, 허영인 SPC그룹 회장,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 등이 지난 3~4월 보유중인 그룹사 주식을 자녀들에게 증여했습니다. 주가가 떨어진 만큼 증여세를 아낄 수 있는 묘수였죠.

형제, 엎치락뒤치락 지분 경쟁

또 다른 질문은 '조양래 회장은 4남매 중 왜 막내아들을 후계자로 지목했을까'입니다. 큰 딸이 성년후견을 신청할 정도로 조양래 회장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아직까지 법원의 성년후견 신청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조 회장이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고 밝힌만큼 경영판단으로 봐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간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구도를 봐도 조양래 회장이 '검증'을 거쳤다는 말이 수긍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지분 승계가 이뤄지기 직전까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조양래 23.59%, 조현식 19.32%, 조현범 19.31%, 조희원 10.82%, 조희경 0.83%의 지배구조를 2013년 7월부터 유지해왔습니다. 지난 7년간 형(조현식 부회장)이 동생(조현범 사장)보다 지분이 0.01%라도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2013년 7월 이전을 보면, 동생의 지분이 형보다 많았습니다. 2012년 말 기준 조양래 회장 15.99%, 조현범 사장 7.1%, 조현식 5.79%, 조희원 3.57%, 조희경 2.72% 등이었습니다. 소폭의 차이는 있었만 이 지배구조는 1999년부터 대략 이어져왔었죠.

20년 넘게 조현범 사장과 조현식 부회장 형제의 지분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조양래 회장으로부터 검증을 받아온 셈입니다. 오랜 검증끝에 아버지의 '마지막 선택'이 막내아들이었던 것이죠. 또 하나 분명한것은 지배구조로 보면 "딸에게 경영권을 주겠다는 생각은 단 한 순간도 해 본 적 없다"는 조 회장의 말처럼 조희경 이사장의 지분은 항상 4남매 중 가장 적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조현범 사장이 하청업체로부터 뒷돈을 받고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1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를 선고받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입니다. 조양래 회장이 조현범 사장을 최대주주로 점찍은 만큼 최종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에 경영권 승계를 서둘렀다는 분석입니다. 자칫 유죄가 확정될 경우 대표이사직을 유지하기 힘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큰딸의 주장처럼 갑자기 조양래 회장의 판단력이 흐려졌을까요, 아니면 아버지의 주장처럼 갑자기 큰딸이 경영권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것일까요. 어느 쪽이 맞는지 아직 단정할 수 없겠죠. 가족만 아는 속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법원의 성년후견 신청 결과가 남은 만큼 답은 빈칸으로 남겨둬야 할 듯합니다. 분명한 것은 대기업의 승계과정마다 반복되는 '막장 드라마'에 눈살이 찌푸려진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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