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사들은 매년 가을 주요 대기업집단의 재무안정성을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보고서를 내놓는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라는 돌발 변수로 사업적 변동성이 증폭했다. 그룹별 사업수익성이나 재무안정성도 편차가 커졌다. 시계가 불투명해진 상황 속에 신평사 보고서를 토대로 삼성·현대차·SK·LG·포스코·한화·GS·한진 등 주요 그룹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쟁점을 짚어본다.[편집자]
지난 4~5월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한화그룹 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장기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꿨다. 신용등급을 곧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경보였다. 한화솔루션(AA-), 한화토탈(AA), 한화에너지(AA-), 에이치솔루션(A+), 한화호텔앤드리조트(BBB+), 한화생명보험(AAA), 한화손해보험(AA) 등 업종을 불문한 7개 계열사가 대상이었다.
근거는 사업 수익성 악화였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주력 사업 이익창출력이 더 빈약해지자 그룹의 체질개선을 목표로 투입한 신사업 투자금의 하중이 더 무거워졌다고 본 것이다. 정부의 '그린 뉴딜'과도 보조를 맞추며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키우려는 한화그룹이지만, 그 과정에서 그룹 전반의 재무적 불안이 노출되고 있다는 게 신용평가사들의 진단이다.
◇ '캐시카우' 화학 흔들리니...
한화그룹의 사업 수익성은 해마다 악화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한화그룹 총 EBITDA(유·무형자산 상각 전 영업이익, 수익성 지표)는 2017년 5조492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로 전환, 지난해 3조8410억원으로 2년 새 30.1% 줄었다.
올해 상반기 EBITDA는 1조2970억원으로 하반기에도 비슷한 수준의 이익을 거둔다면, 그룹은 지난해 수준을 밑도는 연간 성적표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주력 화학 부문 부진이 심상치 않다. 재작년부터 중국, 미국 화학사들이 만든 제품이 시장에 넘치는 공급과잉이 빚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화학·태양광 부문 EBITDA는 2017년 4조4820억원에서 지난해 2조4230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올해 상반기에는 6000억원에 그쳤다.
계열사별 성적표도 실망스럽다. 특히 한화토탈은 올해 상반기 매출(연결재무제표 기준) 3조4137억원, 영업손실 222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32.5% 줄고, 영업손익은 적자로 전환했다. 여천NCC는 올해 들어 2분기까지 매출(별도재무제표 기준) 2조781억원, 영업이익 327억원을 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13.4%, 84.6% 감소한 것이다.
한화솔루션이 그나마 그룹의 실적 악화 폭을 줄였다. 이 회사는 올해 상반기 매출 4조2048억원, 영업이익 2956억원을 벌었다. 전년동기 대비 매출은 8.5%, 영업이익은 23% 늘었다. 태양광 부문이 이 기간 전체 영업이익의 약 절반에 가까운 1579억원을 벌어들인 덕이었다.
한국기업평가는 "태양광 부문의 흑자 전환에도 불구하고 업황 하락에 따른 화학 부문의 수익성 저하로 전반적인 그룹 영업현금창출 규모가 전년 대비 축소되었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사업 축 금융 부문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금융 부문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중금리가 떨어져 발생한 역마진에 수익성이 저하됐다. 한화생명의 경우 보험 가입자에게 지급한 보험료 평균 이율이 자산운용 수익률보다 높아, 지출해야 될 돈은 많고 벌어들인 돈은 부족한 상황이다.
◇ 과감한 투자가 빚부담으로…
문제는 화학과 태양광을 중심으로 지출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화그룹이 유·무형자산을 취득하는데 들인 자금은 2017년 2조2830억원에서 지난해 3조1350억원으로 37.3% 늘었다. 올해는 상반기에 이미 1조4120억원을 자산 취득에 썼다.
이 가운데 화학과 태양광이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2018년부터 5년 간 태양광 부문에 9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뒤 태양광 부문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 중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룹 전체의 부채 부담으로 이어진 상황이다. 그룹 두 축인 화학과 금융 부문의 수익 창출력이 갈수록 떨어지다 보니 투자 대부분을 빚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그룹 전체 순차입금은 2017년 11조5350억원을 기록한 뒤 해마다 증가해 올해 상반기말 기준 15조9000억원으로 2년 반 사이 37.8% 늘었다.
관건은 중장기적으로도 한화그룹의 씀씀이가 줄어들 기미가 없다는 것. 그룹은 태양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소 등 신재생 에너지를 중심으로 사업체질을 개편해 나가는 중이다. 한화솔루션은 지난달 11일 실시한 실적 설명회에서 태양광 발전으로 만든 에너지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그린수소' 사업 육성 계획을 밝혔다.
한국신용평가는 "그룹전체 영업현금흐름 감소에도 불구하고 화학·태양광 중심의 대규모 투자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앞으로도 재무부담 증가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화그룹도 이를 의식하고 있다. 신용등급 강등 우려에 대응해 재무건전성 확보책을 내놓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한화그룹은 한화갤러리아 광교점 등 유통 부문의 자산유동화, 한화에너지 태양광 프로젝트 매각, 주요 기업들의 설비투자 이연 등을 통한 자금부담 완화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에 따른 개별 기업과 그룹 전반의 영향에 대해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