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동남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의약품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인 반면 베트남과 태국 제약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동남아 국가들의 제약 시장 규모는 200억달러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틈새시장을 노려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제약사, 동남아 시장 공략 속도
메디톡스는 최근 대만 등 동남아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만 식품의약국(TFDA)으로부터 보툴리눔톡신 제제 '메디톡신(수출명 뉴로녹스)' 시판 허가를 획득하면서다. 앞서 지난해 메티톡신은 히알루론산 필러 '뉴라미스 볼륨 리도카인'을 허가받았다.
메디톡스는 지난 2015년 대만의 의료기기 업체 디엠티(DMT)와 합작법인 '메디톡스 타이완'을 설립한 이후 대만에서 꾸준히 인지도를 높여왔다. 이번 허가를 통해 메티톡스와 DMT는 메디톡신과 뉴라미스 볼륨 리도카인을 공식 론칭하고 동남아 화교권 시장 선점에 집중할 계획이다.
대웅제약도 동남아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웅제약 인도네시아 합작법인 '대웅인피온'은 의약품에 할랄 인증을 획득해 이슬람 문화권을 공략해왔다. 대웅인피온의 빈혈치료제 '에포디온'은 지난해 판매액 1000억루피아(약 80억원)을 넘어서는 등 성과를 냈다. 베트남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4년 베트남 지사를 설립, 베트남 2위 제약사 '트라파코'와 손잡고 기술이전을 본격화하는 등 시장 영향력을 키워왔다.
베트남,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태국 등 40여 개국에 진출해 현지 법인 등을 보유한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역시 베트남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종합 비타민제 '홈타민'을 앞세워 현지 복합 비타민 시장에서 입지를 공고히 했다. 삼일제약도 최근 베트남 공장시설과 위탁생산(CMO)공장을 짓기 위해 투자금을 마련하는 등 동남아 시장을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파머징 시장, 동남아
동남아는 '파머징(Pharmerging)' 시장으로 불린다. '제약(Pharmacy)'과 '신흥(Emerging)'을 합쳐 떠오르는 제약 신흥 시장이라는 뜻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동남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높은 성장률과 가능성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기업을 자국으로 복귀시키는 '리쇼어링' 분위기가 확산함에 따라 이를 해외 진출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남아는 제약시장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곳이다. 2015~2019년의 동남아 제약시장 연평균 성장률은 약 8%에 달한다. 같은 기간 국내 제약시장 연평균 성장률은 5.3% 정도다. 우리나라보다 동남아 제약시장이 성장성이 더 높다는 이야기다. 동남아 주요 6개 국가의 제약 시장 규모는 200억달러다. 이중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시장이 40억~60억달러 규모를 차지한다.
특히 베트남 시장은 동남아 국가 중 가장 매력적인 시장으로 꼽힌다. 40억달러의 제약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연평균 7%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자국 의약품 비중을 높이는 정부의 제약 육성 정책에 따라 해외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진출 기회나 혜택이 많이 주어진다. 베트남 제약 시장에서 외국 제약바이오 기업 점유율은 65% 정도로 높다.
태국도 전도유망한 시장이다. 태국 제약시장의 성장률은 4%로 국내보다는 다소 낮지만 외국 제약바이오 기업 점유율이 75%에 달한다. 태국을 세계적인 의료 허브 만들기 위한 태국 정부 정책도 이어지고 있다. 태국 정부는 각종 규제를 통해 의약품의 현지 제조를 장려하고 있다. 특히 태국 시장은 제네릭 의약품의 수요가 높고 정부가 주도해 제네릭 사용을 촉진하고 있다.
공급망 재편은 해외 진출 기회
업계에서는 동남아 제약 시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의료 인프라와 공공 보험 제도가 개선되고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동남아 제약 시장 성장 속도는 더욱 빨라지는 추세다. 동남아 제약시장은 향후 5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해 2025년에는 250억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상황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팬데믹을 겪으며 원료 수급과 의약품 제조에 어려움을 경험한 국가들이 위탁해온 의약품 공급망을 다변화하거나 자국으로 끌어들이는 등의 정책을 펼치고 있어서다. 실제로 베트남 정부는 의약품 생산량의 80% 이상을 현지에서 제조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다만, 베트남과 태국 등 주요 동남아 국가들의 공공 의료 시스템에서는 해외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정부에서 공공병원에 납품하는 의약품을 공동 구매해 약품 가격을 낮추는 등 가격 압박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해외 진출 장벽을 낮추기 위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동남아 같은 신흥 제약 시장의 경우 시장의 니즈나 정부 정책 변화를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읽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가별 자국화 정책에 맞춰 현지에 공장을 짓거나 기술 이전을 통한 공동 연구 등이 해외 진출 전략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제약사들의 멕시코 시장 진출에는 코트라와 제약바이오협회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들의 맞춤형 컨설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신흥 거점 시장 진출과 현지 시장과 관련해 규제 상황이나 시장 구조 분석 등 정부 주도의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하고 있는데 제약 기업들의 신흥 거점 시장 진출에 있어 절호의 기회"라면서 "제네릭 의약품 등 우리나라 제약사들의 강점을 살려 틈새시장을 노리고 해외 진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