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 시대가 저물어가면서 전기차가 도로를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기차 필수 부품인 배터리 사업도 급성장하고 있는데요. 기술 우위를 앞세운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영향력 확대가 돋보입니다. 전 세계로 뻗어가는 국내 배터리 업체(소재·셀·리사이클 분야) 현황과 투자계획을 지역별로 살펴봤습니다. [편집자]
북미 지역은 배터리 업계의 최대 격전지로 떠올랐습니다. 올해부터 시행된 미국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 때문이죠.
전기차 확산을 위해 시행된 IRA는 미국 내에서 배터리를 비롯한 첨단소재를 생산할 경우 거액의 세액공제를 제공합니다. 또 전기차에 IRA가 규정한 조건을 충족한 배터리를 탑재하면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도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보조금과 세액공제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자 배터리·전기차 업체들은 미국 현지에 생산 공장을 세우고 있습니다. 단독공장뿐만 아니라 배터리 소재·셀 제조업체, 완성차업체와의 합종연횡까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배터리셀 '북미 러쉬' 본격화
국내 배터리 셀 제조업체 3곳(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은 미국 현지에 단독공장을 비롯 여러 완성차·소재 업체들과 합작 공장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북미 지역 생산 거점 마련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LG에너지솔루션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지역에 총 9곳의 배터리 공장을 가동·건설 중인데요.
우선 이 회사는 미시간주에 20GWh(기가와트시) 규모 단독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오는 2025년 가동을 목표로 애리조나주에 연산 43GWh의 생산 능력을 가진 배터리 공장을 건설할 예정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합작공장 건설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국 완성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사 '얼티엄셀즈'의 1·2·3 공장을 미국에 건설 중이죠. 얼티엄셀즈 1·2·3 공장은 각각 45, 50, 50GWh 규모로 오하이오주, 테네시주, 미시간주에 들어설 예정입니다.
또 얼티엄셀즈 1공장이 들어서는 오하이오주엔 혼다와의 합작사 'L-H배터리컴퍼니(가칭)'공장도 들어섭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생산 규모는 연산 40GWh, 가동 시점은 오는 2025년이 될 전망입니다.
조지아주로 눈을 돌리면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그룹의 합작 배터리 공장이 예정돼 있습니다. 조지아주는 현대차그룹이 연간 30만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 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곳입니다. 현대차그룹은 LG에너지솔루션과 합작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조지아주 공장에서 사용할 계획이죠.
이번엔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 볼까요. 캐나다 온타리오주엔 LG에너지솔루션과 스텔란티스의 합작사 '넥스타에너지'가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넥스타에너지는 오는 2025년을 목표로 연산 45GWh의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고 있습니다.
SK온도 북미 진출에 적극적인 모습인데요. SK온은 지난해부터 조지아주에 단독 공장 두 곳을 운영 중입니다. SK온의 조지아 1·2 공장의 생산 규모는 각각 9.8GWh, 11.7GWh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조지아주엔 현대차그룹과의 합작 공장도 들어설 예정이죠.
SK온의 또 다른 사업파트너는 바로 포드입니다. SK온은 포드와 합작회사 '블루오벌SK'를 설립하고 미국에 두 개의 공장을 건설하고 있는데요. 켄터키주와 테네시주에 들어설 두 공장은 각각 86GWh, 43GWh 규모가 될 전망입니다. 켄터키주에 들어설 배터리 공장은 단일 공장 기준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하는데요. 두 공장은 모두 2025년 양산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삼성SDI도 북미 지역에 가동 중인 배터리 공장이 있습니다. 지난 2016년 미시간주에 중대형 배터리 팩 공장 한 곳을 설립했는데요. 다만 이곳은 셀을 제조하는 곳이 아닌 이미 만들어진 셀을 모아 팩으로 만드는 공장입니다. 전기차 배터리는 보통 '셀-모듈-팩' 단위로 구성돼 있는데요. 셀을 모아 모듈을 만들고, 모듈이 모여 전기차에 탑재되는 팩 형태가 되는 구조죠. 결국 현재 북미 지역에 가동 중인 배터리 셀 공장은 전무한 셈입니다.
앞으로 북미 지역 배터리 시장 규모가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삼성SDI 역시 미국에 배터리 셀 공장 건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다만 단독공장보다는 완성차업체와의 합작공장 방식을 선택했는데요. 확실한 공급선을 확보해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계산이죠.
우선 스텔란티스와 함께 인디애나주에 23GWh 규모의 배터리 셀 공장을 건설할 예정입니다. 2025년 양산이 목표죠. 이 공장은 향후 33GWh까지 생산 규모를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이듬해엔 GM과의 30GWh 규모 배터리 셀 공장이 가동을 시작합니다. 위치는 스텔란티스와 건설 중인 합작공장과 같은 인디애나주입니다.
K배터리 업체들이 미국에 현지 공장을 건설하는 이유는 세액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선데요. IRA 규정 중 첨단부품제조 세액공제는 미국과 미국이 보유한 영토 내에서 배터리와 핵심부품을 제조하면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제도입니다. 특히 배터리 업체들은 세금공제 대신 공제 금액만큼 현금으로 환급받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죠. 미국이 급성장하고 있는 배터리 업체들에 파격적인 유인책을 제시한 셈입니다.
배터리소재 역시 '너도나도'
북미 진출에 적극적인 것은 배터리 소재 업체들도 마찬가진데요. IRA에 따르면 양극재, 음극재, 양극박, 음극박 등 주요 핵심 소재도 미국 내에서 생산할 경우 세액공제 대상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가장 큰 규모의 배터리 소재 공장을 계획하고 있는 곳은 LG화학입니다. LG화학은 2027년까지 30억달러(약 3조8415억원)을 투자해 테네시주에 연산 12만톤(t)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건설할 예정인데요. 이를 위해 LG화학은 테네시주 클락스빌 인근에 총 172만㎡규모의 부지를 확보한 상태입니다. 해당 공장은 올해 하반기 착공을 시작해 2025년 말부터 순차적으로 양산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양극재는 배터리 용량과 수명, 충전 속도를 결정하는 소재인데요. 배터리 원가의 약 40%를 차지해 배터리 소재 중 가장 핵심으로 알려져 있죠.
롯데케미칼도 롯데알미늄과 합작회사 '롯데알미늄머티리얼즈USA'를 설립하고 미국 진출에 나섰습니다. 롯데알미늄머티리얼즈USA는 3300억원을 투자해 켄터키주에 연산 3만6000t 규모 양극박 공장을 건설할 예정인데요. 롯데케미칼에 따르면 예상 완공 시점은 2025년입니다. 양극박은 알루미늄을 20㎛(마이크로미터) 이하로 얇게 가공해 만든 전기차 배터리 부품인데요. 전기차 배터리 내에서 전자 이동통로 역할을 하는 핵심부품입니다.
캐나다로 올라가면 포스코퓨처엠과 솔루스첨단소재가 내년 완공을 목표로 배터리 소재 공장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우선 포스코퓨처엠은 미국 진출을 위해 GM과 합작회사 '얼티엄캠'을 설립했는데요. 얼티엄캠은 지난해 7월 총 6억3300만달러(8116억원)를 투자해 캐나다 퀘벡주에 연산 3만t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내 첫 양극재 공장인 만큼 캐나다 연방 정부와 캐나다 연방 정부와 퀘벡 주 정부로부터도 대규모 인센티브도 약속받은 상태죠.
솔루스첨단소재는 지난해 7월부터 퀘벡주에 연산 1만8000t 규모 전지박 공장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전지박은 배터리의 음극 부분에 씌우는 얇은 구리막입니다. 배터리 내에서 전자가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데요. 양극박과 역할이 같지만 양극박이 양극재를 씌우는 알루미늄박이라면 전지박은 음극재를 코팅하죠.
북미 진출을 결정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시기나 지역이 정해지지 않은 업체들도 있는데요. 에코프로비엠과 코스모신소재는 오는 2025년 북미 지역에 양극재 공장을 완공하겠다는 목표인데요. 현재 부지 결정을 위해 여러 선택지를 두고 검토 중인 상태입니다.
엘앤에프도 미국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 '레드우드머티리얼즈'와 함께 미국 내 전구체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글로벌 1위 동박제조업체 SK넥실릭스 역시 미국 내 동박생산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요. 엘앤에프와 SK넥실리스 모두 북미지역 진출은 결정했지만 정확한 시기나 지역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 성일하이텍도 미국 진출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성일하이텍은 오는 2024년 완공을 목표로 2000만달러(약 256억원)를 투자해 조지아주에 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건설할 계획입니다. 근처에 SK온의 배터리 공장이 있는 데다, 2025년엔 현대차그룹도 전기차 공장 건설을 앞두고 있어 배터리 재활용 제품 유리할 것이란 판단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