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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예탁원 사장 도전 노조위원장 "관피아 끊겠다"

  • 2020.01.07(화) 14:21

제해문 노조위원장, 최초 내부인 후보자
거래소 소유구조 개편, 신사업 비전 제시

한국예탁결제원의 이병래 사장 후임으로 금융위원회 출신 이명호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이 거론되면서 이른바 '금융권 관피아(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의 낙하산 인사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금융 관료의 사장 대물림 관행을 끊겠다며 들고 일어선 내부인이 있다. 사장 후보자로 지원한 제해문 노조위원장(53)이다.

한국예탁결제원 사장 후보자로 지원한 제해문 노조위원장이 7일 여의도 사옥에서 비즈니스워치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한국예탁결제원의 임원추천위원회는 지난해 12월22일로 임기를 마친 이 사장의 후임을 뽑기 위해 지난달 24일부터 1월3일까지 사장 후보자를 모집했다.

공개모집과 추천방식을 병행했는데 이명호 수석전문위원과 제해문 노조위원장을 포함한 5~6명의 후보자가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3~4인이 누군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드러난 2명 후보자의 면면만 살펴봐도 혼전이 예상된다.

7일 서울 여의도 사옥에서 만난 제 위원장은 "임추위의 사장 공모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짜맞추기식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관피아 인사 관행을 끊기 위해 직접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사장 후임을 뽑는 절차가 겉으로는 합법적이고 공정한 방식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상 청와대가 내정한 이 위원 선임을 위한 코스프레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제 위원장은 "낙하산 인사가 계속되는 것은 관피아들이 전임 사장이자 선배들의 경영 치부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며 "금융 당국이 예탁결제원을 자신의 소유물인 것 마냥 취급하면서 사장 자리를 챙기는 것이 자본시장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말했다.

아울러 관피아 출신이 오랜 기간 경영의 키를 잡으면서 예탁결제원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존립 기반 마저 위태롭게 됐다고 지적했다.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으로 일관하며 정권이 끝날 때만을 기다리는 행태를 보여준 역대 관료 출신 사장들로서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제 위원장은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음에도 예탁결제원은 과감한 관련 인적·물적 투자를 추진하지 않았다"라며 "관료 출신 사장은 보신주의에 빠져 적극적인 결단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올해로 설립 46주년을 맞은 예탁결제원에서 내부인이 사장직에 도전한 것은 처음으로 기록된다. 사장 다음으로 높은 서열 2위 전무이사 자리에 직원이 승진한 사례는 있으나 최고경영자(CEO)까지 오른 적은 없었다.

제 위원장에 대해 구성원이 거는 기대감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보통 직원 출신의 CEO는 외부인에 비해 업무 파악 능력이 뛰어나고 조직원과의 유대감을 통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의 또 다른 자회사이자 금융 특화 정보기술(IT) 업체 코스콤은 창립 40년 만에 최초의 내부인 출신 정지석 사장이 2017년 취임하고 나서 의미있는 경영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 경영 목표이자 역대급 실적인 '매출 3000억원'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신규 사업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등 예전의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조직문화에서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제 위원장은 "저의 사장 후보 지원 소식이 알려지면서 임직원들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많이 보내왔다"라며 "예탁결제원 역사에서 한번도 내부인이 사장직에 오르지 못한 것은 오랜 기간 체념에 빠져 스스로 금기를 만들었기 때문인데 이를 깨뜨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신은 준비된 사장 후보라고 소개했다. 제 위원장은 현재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 예탁결제원지부를 맡고 있다. 2009년에 처음 임기 2년의 위원장으로 선임됐으며 지난해 재선에 성공하면서 두번째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예탁결제원은 2009년에 금융 공기업으로선 드물게 우리사주조합이 설립됐는데 당시 제 위원장이 이를 주도했다. 그는 25년간 인사노무관리와 법무 등 후선사무를 비롯해 주식예탁과 청산결제, 증권파이낸싱 같은 일선 사무까지 섭렵해 자본시장의 생리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사장 후보로서 경영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제 위원장은 한국거래소가 지분 70%를 보유하며 예탁결제원을 소유하는 지금의 지배구조로는 금융시장의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본시장법에선 예탁결제원이 대체거래시스템(ATS)에 30% 이내 자본을 출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고 ATS의 청산업무도 가능하지만 한국거래소와의 지분 관계 때문에 출자 조차 어렵다고 비난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거래소가 보유한 예탁결제원의 지분을 50% 미만으로 낮추고 글로벌 파트너 관계인 외국계 금융투자사들을 주주로 끌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제 위원장은 "ATS 관련 법인의 설립을 예탁원과 거래소가 주도한다면 시장이 가장 먼저 반길 것"이라며 "ATS를 통한 수수료는 기존 거래소를 통한 수수료보다 거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저렴해 기관 투자자 등이 좋아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행법상 ATS 법인 설립이 가능한데도 거래소는 수수료 수익 감소 우려로 이를 막고 있는 상태"라며 "거래소는 예탁원과 손을 잡고 적극적으로 ATS 설립을 추진하면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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