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가 담합 과징금 폭탄에 떨고 있다. 올해까지 건설사들에게 떨어지는 과징금 규모는 누적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인천지하철 2호선·대구지하철 3호선·부산지하철 1호선·경인아라뱃길 등 주로 이명박 정부때 발주한 대형 국책사업 대부분이 담합 통지를 받았다.
건설경기 침체가 수년 째 지속되며 작년 일부 건설사들이 대규모 적자를 내는 등 경영 실적이 악화된 상황이어서 과징금으로 인한 부담은 어느 때보다 크다. 그러다보니 11일 호남고속철 관련 과징금이 사상 최대 규모로 부과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 "해외에서 벌어 국책사업에 쏟아붇는 꼴"
일단 억울하다는 목소리가 가장 높다. 담합 판정을 받은 사업에서 건설사들 사이에 업무 협의가 있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이는 대형 국책사업에 동원되면서 겨우 적자나 면하자고 한 것이지 부당이익을 챙기려 한 것은 아니라는 항변이다.
최상근 대한건설협회 계약제도실장은 "과거 수행사업의 단가를 이후 사업의 예정가격으로 잡는 실적공사비 제도가 도입되면서 예정가격이 형편없이 낮아졌다"며 "해마다 계단식으로 낙찰가격이 낮아지다보니 대부분의 공공공사가 이익을 남기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업계에서 공공공사는 '기부'공사로 불리고 있다. 폭리를 취하기 위한 담합은 있을 수 없다"며 "건설업계 이익률이 5%도 채 안되는 상황에서 일률적으로 사업비의 10%를 과징금 기준으로 삼는 것도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형건설사 S사 관계자는 "'해외에서 고생해 돈 벌어서 정부 좋은 일만 시킨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국책사업에서 흑자를 내는 기업은 거의 없는데 과징금에 입찰참여 제한까지 가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고 하소연했다.
공공 토목사업 비중이 높은 경남기업에서는 "토목공사에서 담합으로 이익을 얻었다면 지금처럼 법정관리에 들어갈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 회사 관계자는 "4대강이나 호남고속철 같은 대형 토목공사에서 엄청난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 "입찰제한까지 2중규제로 건설업 고사"
▲ (자료: 대한건설협회 및 각 사) |
대형사인 G건설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입찰 전 협의한 것은 맞지만 이는 알려진 것처럼 엄청난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며 "발주물량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과도한 경쟁은 오히려 출혈 경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는 차원의 협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담합 관련 누적 과징금이 가장 많은 회사는 현대건설로 현재까지 620억원을 부과받았다. 이어 ▲대림산업 564억원 ▲SK건설 508억원 ▲대우건설 486억원 ▲GS건설 444억원 순이었으며 포스코건설과 삼성물산, 현대산업개발에도 각각 333억원, 304억원, 288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특히 건설업계는 과징금 부담과 더불어 입찰제한으로 2중 처벌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개선이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대형사인 D건설 공공 수주부문 팀장은 "담합 처분이 내려지면 과징금 부과 뿐만 아니라 해당 발주처의 민·형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추가 손실이 크게 발생한다"며 "여기에 입찰제한까지 가하는 것은 건설사를 고사시키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담합 조사결과 발표가 '시리즈'처럼 순차적으로 이뤄지면서 건설업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는 점도 우려하는 대목이다.
대형건설사 H사 고위 관계자는 "담합 과징금을 부과 받은 공사 대부분이 2008~2010년 발주된 과거 국책사업인데 이에 대한 처분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줄줄이 나오고 있다"며 "그러다보니 건설사들이 과징금 제재를 받으면서도 계속 담합을 저지르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