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체포되는 등 정치 혼란이 본격화하면서 부동산 시장도 불확실성이 커졌다. 윤석열 정부가 집중 추진하던 정비사업 규제 완화, 신규택지 공급 등의 부동산 정책의 동력이 상실될 위기라는 지적이 많다.
부동산 정책을 진두지휘 해야 할 국토교통부마저 지난달 벌어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까지 겹쳐 혼란에 빠져 있다. 장관이 사의 표명까지 하면서 더욱 뒤숭숭하다. 윤 대통령의 '임기 내'(2027년) 추진키로 했던 정책들이 어찌될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비사업 규제 완화 핵심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22년 5월 취임 이후 부동산 규제 완화를 통한 대규모 주택 공급을 강조해 왔다. 임기가 끝나는 2027년까지 전국에 270만가구를 공급하는 목표를 이뤄 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여소야대' 정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법 개정이 수반되는 규제 완화는 속도가 더뎠다. 대표적인 게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폐지다. 재초환 폐지는 22대 국회에서 국민의힘이 '1호 법안'으로 발의할 정도로 추진 의지가 높았다.
국토교통부 역시 지난해 8월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재초환 폐지를 공식화했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가운데, 지난해 12·3 비상계엄을 시작으로 탄핵 정국에 접어들면서 갈 길을 잃었다.
재초환은 재건축 추진을 어렵게 하는 '대못' 규제라는 게 윤 정부의 인식이다. 시장에서도 서울 등 도심에선 재건축이 주된 공급원인 만큼 재초환 폐지가 '270만 가구' 공급 계획의 성패를 가르는 열쇠로 꼽혔다. ▷관련 기사:[집잇슈]다 풀고 남은 부동산 규제 '셋' 운명은?(2024년7월10일)
그러나 국토부가 이달 14일 발표한 신년 업무 보고(주요 현안 해법회의)에선 이 내용이 빠졌다. 이와 함께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위해 국정 과제로 추진했던 공시가율 현실화 로드맵 폐기, '임대차2법' 정상화 등도 포함되지 않았다.
공시가율 현실화 로드맵은 문재인 정부에서 2030년까지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시세의 90%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높이기로 한 계획이다. 그러나 이후 집값 하락, 경기 침체 등이 맞물리면서 공시가격 시세 반영률 인상에 따른 부담이 커졌다.
이에 윤 정부는 해당 계획을 폐지하고자 했으나 야당이 '부자 감세' 등을 이유로 반대하면서 법안 통과가 지연됐다. 정부는 일단 시세 반영률을 2020년 수준으로 유지했다. ▷관련 기사:9억짜리 집 내년 공시가격 '6.5억원→6.3억원'(2024년9월12일)
임대차2법은 계약갱신청구권(2+2년)과 전월세상한제(연 5%)다. 당초 임대차2법은 임차인 보호를 위해 도입됐으나 오히려 임대 보증금에 4년 치 가격 상승분이 한꺼번에 반영되면서 전셋값 불안을 야기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또한 야당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들 정책 모두 법안을 손질해야 하기 때문에 야당 합의가 필수적이다. 야당 역시 여론을 의식해서 일부 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지난해 말부터 탄핵 정국에 들어서면서 논의 자체가 어려워졌다.
이 같은 우려에 국토부 측은 "주요 업무 추진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미 발표한 부동산 규제 정상화 과제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입법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경기 침체에 '신규 공급' 안갯속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GB) 해제, 신규 택지 조성 등을 통한 신규 공급 추진도 힘을 받기 어려워 보인다. 가뜩이나 주민 반발, 공사비 인상, 경기 침체 등으로 사업 추진 여건이 악화해서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서리풀지구(2만가구) △경기 고양대곡 역세권(9400가구) △경기 의왕 오전왕곡(1만4000가구) △경기 의정부 용현(7000가구) 등 4곳에 총 5만400가구의 신규 택지 후보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중 서리풀지구는 입지 경쟁력이 높아 주목받았지만 지역 주민들이 강제 수용에 반발하고 나선 상태다. 토지주가 강제 수용에 불복하면 이의 제기, 행정 소송까지 갈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사업이 지연되며 계획보다 공급이 늦어질 수 있다. ▷관련 기사:'현대차사옥 뒤부터 옛골까지' 서리풀지구 2만가구 누구에게?(2024년11월5일)
윤 대통령의 임기에 맞춰 '2027년 첫 착공'이라는 다소 무리한 목표를 세운 1기 신도시 재정비 역시 시작부터 험로가 예상되고 있다. 지난해 말 1기 신도시 선도지구를 지정했지만 지역·단지마다 이해관계가 달라 갈등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경가 성남시 분당신도시의 경우 국토부가 지정한 이주주택 부지 대신 대체부지 발굴에 나섰다. 국토부는 분당신도시 재건축 이주 수요를 위해 야탑동 중앙도서관 인근 보건소 예정부지를 개발해 공공분양 1500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교통 혼잡 등의 이유로 주민들의 반대가 이어졌고, 성남시는 사전 협의 없는 일방적인 발표였다며 국토부에 부지 취소를 요청하기도 했다.
3기 신도시 공급도 속도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정부는 지난해 9월 3기 신도시 최초로 본청약이 이뤄진 인천계양 외 남양주왕숙, 부천대장, 고양창릉, 하남교산 4개 지구도 내년 상반기에 분양하겠다는 계획을 잡아놨다.
그러나 건설경기 침체, 원자잿값 상승 등으로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밖에도 윤 대통령의 임기에 맞춰 추진 중인 해외건설 수주 연간 500억달러를 비롯해 교통 분야의 GTX-D~F 임기 내 예타 통과, 완전 자율주행 상용화 등도 안갯속이다.
여기에 국토부 수장마저 사의를 표명하면서 주요 부동산 정책의 동력이 더 약해질 거란 우려가 나온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지난 7일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관련 브리핑에서 사고가 어느 정도 수습이 되면 사임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관련 기사:국토장관 "여객기 사고 책임…사표 쓰고 물러나는 게 맞아"(1월7일)
다만 대통령 및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선 공급 확대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추진 중인 부동산 정책의 큰 틀이 바뀌진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서울 등 집값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급 확대가 근본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에 일관성 있게 추진하고, 규제 완화는 시장 흐름에 따라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