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매년 8월 전후로 내놓는 세제개편안에는 약 400~500개의 법과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 내용이 담긴다. 개별적인 제도에 따라 이해 당사자들의 희비가 엇갈리지만, 세금 정책에는 정부가 의도한 흐름이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 들쭉날쭉하던 정책 기조는 불안정한 경제 상황과 닮았다. 2006년 이후 내수 경기가 살아나면서 세금이 예상보다 많이 걷혔고, 2008년까지 국민들의 세금을 줄여주는 감세 정책이 나타났다.
최근에는 증세 기조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 경제와 내수 모두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재정이 넉넉치 못하다. 올해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나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심각한 세수 부족 사태가 예상되기 때문에 당분간 증세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 금융위기 후 4년째 증세
이명박 정부 첫 해 8월에 찾아온 미국발 금융위기는 정권의 대선 공약이자 경제 이념이었던 감세 정책을 1년 만에 증세 기조로 바꾸게 만들었다.
2008년 감세로 11조7000억원의 세금을 풀어놨던 정부는 2009년 세제개편에서 10조500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증세 방안을 내놨다. 성인 학원비와 미용 성형수술에도 부가가치세를 과세하고, 신용카드 공제율은 축소했다.
2010년과 2011년에도 각각 임시투자세액공제를 폐지하거나, 조세감면 제도를 대폭 정비하는 등 세금을 쥐어짜는 작업이 이어졌다.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과세 방안도 새로 도입됐다.
지난해 역시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을 인하하고, 참여정부 시절 도입한 증여세 완전포괄주의를 개선하는 노력이 계속됐다. 금융위기 이후 4년 동안 총 17조원이 넘는 세금을 더 받겠다는 개편 방안이 나왔다.
◇ "세금 부족하다. 더 내라"
올해 세수 부족에 대한 우려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보다 총 국세가 10조~20조원은 덜 걷힐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국세수입 실적이 전년보다 떨어진 경우는 1998년(구제금융)과 2009년(금융위기) 밖에 없었고, 당시 줄어든 규모도 2조원 이내였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지하경제 양성화와 적극적인 비과세·감면 축소를 추진하고 있다. 공약으로 내건 복지 재원만 135조원에 달하기 때문에 세금을 더 걷어도 모자랄 판인데, 오히려 사상 초유의 세수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과 같은 '직접적 증세'는 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다만 최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밝힌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에는 국민 생활에 밀접한 소득세와 소비세 부담을 늘리자는 내용이 담겼다. 만일 올해 세제개편안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임기 내에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기 이전처럼 극적인 세수 호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한 증세 기조는 계속될 전망이다. 세금을 더 내야하는 중산·서민층의 조세 저항이나, 정치권의 비협조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이미 증세 카드를 다 보여준 정부가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설득력 있는 논리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