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세`를 아시나요. 정든 고향을 떠나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면 세금의 일부를 깎아주는 제도인데요. 일본에서는 2008년에 도입돼 지방정부의 재정을 살찌우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10년 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문국현 후보가 고향세를 처음으로 제안했고 18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들이 등장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는데요. 지난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의 하나로 '고향사랑 기부제 활성화'를 담으면서 논의가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들이 고향세 도입을 위해 활발한 입법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국회에 제출된 고향세 관련 법안들은 오는 11월 정기국회에서 논의 테이블에 오릅니다. 고향세 납부 구조와 도입에 따른 영향 등을 미리 살펴봤습니다. [편집자]
고향세는 지방정부의 열악한 재정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등장했습니다. 지자체들이 지방세 수입만으로는 살림을 꾸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거든요. 그래서 대처에 나가 있는 성공한 고향 사람들에게 손을 벌리자는 아이디어가 나온 겁니다.
고향세 제도는 이런 저런 대안이 검토되고 있는데 개략적으로 보면, 서울에서 은행 지점장을 하는 삼척 출신 A씨가 삼척시청에 15만원을 기부하면 소득세에서 10만원을 세액공제해 주고, 1만5000원 상당의 지역 특산품을 주는 방식입니다.
현재 20대 국회에 제출된 법안 가운데 '고향세' 명칭을 쓴 법안은 11건입니다. 국회의원 5명이 2~3건씩 패키지로 발의한 상태입니다. 고향세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기부금품 모집 법안을 비롯해 조세특례제한법, 지방세특례제한법, 소득세법 등을 개정해야 합니다.
지난해 8월 고향세 법안을 낸 안호영 의원(더불어민주당, 전북 완주·진안·무주·장수군)은 법정기부금 형태의 고향기부 제도를 제안했습니다. 직장인이나 사업자가 과거 10년 이상 거주한 지자체에 고향기부금품을 접수할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을 만들고, 100만원 이하의 고향기부금에 대해서는 지자체의 기부심사위원회 심사도 생략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법안에 난색을 보였습니다. 고향기부제라는 명목으로 지자체의 기부금품 모집을 허용하게 되면 암묵적인 기부 강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죠. 박근혜 정부가 대기업을 윽박질러 미르·K스포츠 재단에 기부를 강요한 것과 비슷한 사례가 생길 수 있다고 본 겁니다.
고향세 도입 취지가 지자체에 대한 세수 지원이라면, 농어촌발전공동모금을 통해 조성된 재원을 농어촌 지자체에 배분하는 방안(2016년 7월, 황주홍 의원 대표발의)이 더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잠시 주춤했던 고향세 도입 논의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다시 활발해졌습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고향사랑 기부제도'를 통해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에 기부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이때부터 국회의원들도 적극적으로 법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부산 북구·강서구갑)과 홍의락 의원(대구 북구을)이 각각 고향세 법안을 제출했고, 자유한국당의 강효상 의원(비례대표)에 이어 지난 8월에는 김광림 의원(경북 안동시)까지 법안을 내놨습니다.
전 의원은 재정자립도 20% 이하인 지자체 출신이 고향기부금을 내면 10만원까지 소득세에서 전액 세액공제하고 10만원을 초과한 금액에 대해서는 15%를 세액공제해 주는 안을 내놨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근무하는 경북 청도군(2017년 재정자립도 16%) 출신 직장인이 20만원을 고향기부금으로 내면 소득세 11만5000원을 공제해 주는 겁니다.
홍 의원은 지방 출신 수도권(서울·경기·인천) 거주자가 소득세액의 10%까지 고향 지자체에 기부하는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만약 인천에서 근무하는 충남 공주출신 직장인이 연간 소득세로 100만원을 낸다면 90만원만 중앙정부에 납부하고 나머지 10만원은 공주시청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김 의원은 고향기부금을 낸 사람에게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지자체는 특산품으로 답례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안동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직장인이 고향기부금을 신청하면 연말정산에서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안동시는 간고등어를 답례품으로 보내주는 방식이다.
지자체들도 고향세를 도입하자는 의견을 꾸준히 내고 있는데요. 전남도의회가 지난 7월 고향세 도입 촉구 건의안을 채택한데 이어 진도군의회와 장흥군의회까지 나섰습니다. 충북·충남·전북·강원·경북·경남지역 지자체들도 고향세 도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 지자체에서는 역차별을 주장하며 반대 입장을 보이는데요. 고향세가 재정이 열악한 지방에는 도움이 되지만 수도권 지자체 입장에선 오히려 재원이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경우 수도권에 낼 주민세를 지방에 내는 방식 때문에 역차별 논란을 부른 바 있죠.
우리나라는 2010년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이 고향세를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수도권의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고향세에 대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