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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보험 인사이트]해지와 유지의 경계선

  • 2020.12.14(월) 09:30

코로나19로 인해 실직을 하는 근로자나 폐업을 결정하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이 때문에 보험 계약의 해지율도 증가세다. 당장 먹고 살 것을 걱정해야 하니 언제 발생할지도 모를 위험을 담보하는 보험 계약은 사치로 느껴질 것이다. 오늘 해지되는 계약도 체결 당시에는 완벽하고 최선이라 설명되었다. 하지만 전 세계를 강타한 감염병 사태로 인해 보험 계약의 효용은 증명되지 못하고 해지된다.

그런데 보험 계약이 재앙과 같은 상황에서만 해지되는 것은 아니다. 중개 수수료가 신계약을 통해서만 발생하기에 문제없는 계약이 부당하게 해지되는 일도 많다. 운전자보험처럼 법과 연동성이 높은 보험종목은 법률의 개정으로 인해 해지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 체결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관 개정, 삶의 방식 변화, 의료 기술의 발전 등으로 인해 납입 보험료 대비 보험금 효율이 낮아진 계약도 해지 가능성이 높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올 상반기 15회차 보험 계약 유지율을 살펴보면 생명보험 62.2%, 손해보험이 65%다. 계약 체결 후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에서 10건 중 약 3~4건이 해지를 경험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신체를 피보험목적으로 삼는 장기 인보험은 100세 시대를 내세워 세만기 계약이 주를 이룬다. 평생을 지켜줄 것이라 강조되며 체결되지만 계약 유지율을 살펴보면 처참한 수준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볼 때 세만기 중심의 장기보험 설계가 올바른 것인지 의문스럽다.

일례로 2000년대 초반 한 대형 손해보험사에서 '80 평생'이란 신상품을 출시했다. 당시 경험생명표를 살펴보면 남성과 여성 모두 평균수명이 80세 미만이다. 상품명에서도 추측할 수 있지만 보통약관의 기본계약 및 주요 특별약관이 세만기 80세였다. 평균적으로 80세 이전에 사망하기에 80세 만기면 평생을 지켜줄 것이라는 기대 속에 제안되고 체결되었다. 하지만 해당 상품의 출시 후 경험생명표를 살펴보면 여성부터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서게 된다. 이 때문에 평생을 지켜준다는 약속이 무색해진 상황이 발생했다. 이런 문제는 특정 보험사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대다수의 보험사가 출시한 상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문제다.

이후 해당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본계약 및 특약 모두를 100세 만기로 연장한 상품이 대거 출시된다. 앞서 언급한 상품도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판매 중지되었다. 이후 '100세 건강'이란 상품명의 신상품이 출시된다. 현재에도 80세 만기 약관을 두고 무조건 100세로 변경해야 함을 강조하며, 기존 계약을 쉽게 해지하고 신계약을 권하는 모습이 자주 관찰된다. 고연령에서는 세만기의 연장을 고려하는 것도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젊은 피보험자에게도 100세만을 강조하는 모습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납입 기간까지 보험료가 잘 납입되어 피보험자의 특정 연령까지 유지된다면 표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도 물가상승률에 의한 사고 시점에 지급된 보험금의 실제 가치를 고려한다면, 한 계약을 평생토록 유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현재 사망보험금으로 1000원을 받는다면 이상하다. 하지만 이런 일은 실제 발생할 수 있다.

채만식의 장편소설 '탁류'를 보면 비극적 여주인공이 자신의 딸을 위해 동거남에게 사망보험금이 1000원인 생명보험에 가입하자고 조르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 1000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신문연재소설인 '탁류'가 연재된 시기는 1937년이다. 80년 전 1000원은 남겨진 자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큰 가치를 지닌 금액이다. 하지만 물가상승 등으로 인해 현재 1000원의 가치는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락했다.

살펴본 것과 같이 보험 계약은 빠르게 해지를 경험하기에 문제가 된다. 또한 무조건 유지만 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특히 신체는 대체 불가능한 피보험목적물이기에 사고 발생 후 계약 체결에 제한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무조건 세만기를 강요하는 것과 과거의 계약만을 고수하는 것 모두 지양되어야 한다. 평생 지켜준다는 계약도 여러 이유로 쉽게 해지된다. 또한 오랜 시간 유지하더라도 사고 시점에 따라 보험금이 제 역할을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사고까지 보험 계약이 유지되고 사고 후 지급된 보험금의 효용을 높일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해지와 유지의 경계선에서 건전한 긴장을 유지할수록 보험 계약의 가치는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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