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설계사업을 떼어내 DB팹리스(가칭)를 설립하기 위해 물적분할을 추진 중인 DB하이텍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준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정확히는 DB하이텍 주주들로부터 물적분할 반대의사 통지를 접수받는 일부 증권사들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의 사전 단계인 '반대의사 통지' 기준을 연장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DB하이텍이 물적분할 안건을 3월 정기주총에서 다루기로 한 이후 일부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나오자 보완책을 마련한 것이다. [관련기사=[단독]금융위가 내놓은 물적분할 주주보호 시작부터 '삐걱']
2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등 일부 증권사들이 DB하이텍 주주들에게 물적분할 반대의사 통지를 다시 신청하라는 안내문자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들이 DB하이텍 주주들에게 보낸 문자를 보면 DB하이텍과 DB하이텍우선주(DB하이텍1우)에 대한 반대의사 통지 및 매수청구 기준일자가 기존 2022년 12월 31일에서 2023년 3월 10일로 바뀌었다는 내용이다.
증권사들의 이러한 안내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가능한 주주 기준일이 지난해 12월 31일에서 올해 3월 10일로 연장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올해 1월부터 3월 10일까지 DB하이텍 주식을 매수한 주주들도 물적분할 반대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주식매수청구권 기준일이 연장된 것은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내놓은 물적분할 반대시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제도 개선안에 허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지난해 말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물적분할에도 주식매수청구권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제도에 따라 DB하이텍을 포함, 최근 물적분할을 발표한 기업들은 주주들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문제는 기업들이 3월 정기주총에서 물적분할 안건을 다루면서 주총 전 반대의사를 통지하고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의 기준을 정기주총 주주확정기준일(2022년 12월 31일)과 동일하게 잡은 것이다.
DB하이텍 역시 이달 7일 이사회에서 물적분할을 결정했지만 원칙적으로 반대의사를 통지하고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 기준일을 2022년 12월 31일로 잡았다. 이로 인해 올해 1월부터 3월 초까지 DB하이텍 주식을 매수한 주주들이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자본시장법(제165조의5)에 따르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의 기준은 이사회결의 내용을 공시하기 전 주식을 취득한 주주(결제일 기준으론 이사회결의 공시 다음날)가 대상이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이사회 결의 자체에 반대하는 의사표현이므로 당연히 이 기준을 적용해야한다.
따라서 3월 7일 물적분할을 발표한 DB하이텍은 올해 1월부터 이사회결의 전까지 주식을 매수한 주주들에게도 주식매수청구권을 보장해야 했다.
금융위가 물적분할 시 일반주주 보호방안 대책을 내놨지만 실제 상장사들이 정기주총에서 물적분할 안건을 다루면서 제도상 허점이 나타난 것이고, 이에 일부 주주들은 본인들의 주식에 주식매수청구권이란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 혼란을 겪은 것이다.
이후 증권사들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능한 주주 기준일을 연장한다는 안내를 보내면서 올해 1월부터 3월 초까지 DB하이텍 주식을 매수한 주주들도 주총 전 반대의사 통지 및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다만 이러한 '응급조치'에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주총 전 반대의사 통지 → 주총 의결권 행사(반대 혹은 기권) → 주총후 매수청구권 행사 순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이다.
이번 응급조치는 주총 전 반대의사 통지를 할수 있는 주주 기준을 연장한 것일뿐, 주총 의결권 행사 기준일(2022년 12월 31일)은 변함없다.
따라서 주총 전 물적분할에 반대의사를 통지한 주주가 정작 주총에선 물적분할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를 온전히 해소하지 못한 것이다.
즉 반대의사 통지가 가능한 주주와 주총에서 물적분할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점이 남아있다.
결국 근본적인 제도 개선 없이는 앞으로도 상장회사가 물적분할을 결정하고, 정기주총에서 이 안건을 처리할때 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대의사 통지 주주와 주총 의결권 행사 주주를 동일하게 잡기 위해선 임시주총에서만 물적분할 안건을 다룰 수밖에 없다. 또는 정기주총 의결권 행사 기준과 맞추기 위해 해마다 연말에만 물적분할 안건을 결의해야 한다.
결국 금융위가 추가적인 제도 개선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먼저 배당금을 확정한 뒤 투자하는 배당기준일 변경 개선안처럼 물적분할 시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기준일도 정해야 한다"며 "만약 이에 대한 제도개선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물적분할 안건은 정기주총에서 다루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