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이 주도하면 충분한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습니다. 전국에 총 83만 가구의 신규 부지를 확보할 계획입니다."(2월 4일, 국토교통부)
정부가 지난 2월 4일 내놓은 '공공주도 3080(혹은 2·4대책)' 대책의 핵심은 '속도'였다. 5년 안에 전국에 80만 가구를 공급할 수 있는 부지를 확보하겠다고 공언했다. 서울 등 도심 지역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입주까지 5년 안에 끝내겠다는 의욕적인 청사진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더디기만 하다. 그나마 가장 속도를 내고 있는 도심공공주택 복합사업도 가시화된 곳은 9곳(예정지구 지정)에 불과하고 공급량도 1만4000가구 정도다. 현재 2·4대책의 후보지는 141곳으로 전부 합쳐도 15만6000가구에 불과하다. 이들 지역에서 5년내 공급이 이뤄질 수 있을지 여전히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2.4대책의 주를 이루는 도심 지역 개발의 경우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경우가 많아 '계획대로' 추진하기엔 난관이 많을 것으로 전망한다. 또 내년 대선 이후 민간 재건축·재개발 등에 대한 정책 기조가 바뀔 수 있다는 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도심복합사업, 연내 본지구 지정 목표
국토교통부는 최근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이하 도심복합사업)으로 5곳을 2차 예정지구로 지정했다. 이로써 도심복합사업 예정 지구로 총 9곳을 지정해 1만 4000만 가구 규모의 공급을 확보하게 됐다. 국토부는 앞서 선정한 1차 예정지구 4곳에 대해서는 연내 본지구 지정을 완료한다는 목표다.
정부가 올해 초 내놓은 2.4대책은 서울에 약 32만 가구, 전국적으로 총 83만 6000가구에 달하는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25년까지 해당 부지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그간 낮은 수익성 등으로 민간이 재개발 등을 추진하기 어려웠던 도심 일부 지역을 공공이 직접 나서서 정비,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총 141곳을 도심 내 주택공급 후보지로 선정했다. 주택 공급 규모로 보면 15만 6000가구 정도다. 역세권과 저층주거지 등을 정비하는 '도심복합사업'으로 8만 9600가구, 재개발·재건축 등 '공공정비 사업'으로 3만 6900가구 등을 후보지로 정했다.
5년 내 입주?…아직 '산 넘어 산'
시장에서는 2.4 대책이 새로운 주택 공급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해석한다. 서울 등 주요 도심에서 현실적으로 대량 공급이 쉽지 않은데, 공공이 직접 나서서 숨통을 트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정부의 사업 추진 단계가 여전히 '계획'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2.4 대책 발표 이후 지금껏 '후보지' 발굴에 매달려왔다. 이를 통해 모은 도심 내 주택공급은 15만여 가구다.
이런 후보지를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주민 동의 등의 절차를 거쳐 '본 지구'로 지정해야 하는데, 아직 이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2.4대책이 주택 공급 측면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지에 대해 판단하기조차 어려운 단계라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본 지구 지정부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핵심 사업 중 하나인 '도심복합사업'에서 예정지구로 선정된 뒤 본지구 지정을 위해서는 주민 3분의 2, 토지면적 50% 이상의 동의를 확보해야 한다. 1년 이내에 이를 채우지 못하면 예정지구 지정은 자동 해제된다. 예정지구로 지정된다 해도 6개월 이내에 주민 절반이 반대하면 지정이 해제되는 점도 변수다.
국토부에 따르면 도심복합사업 후보지 65곳 중 22곳만이 지구지정요건 3분의 2 이상을 채웠다. 다른 22곳의 경우 찬성률이 아직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3080공공주도반대전국연합'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반대 여론을 확산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원주민의 이주와 철거 과정이 계획대로 진행될지도 관건이다. 민간 정비사업에선 이 과정에서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과연 정부가 공언한대로 5년 내 입주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
국토부는 사전 청약 뒤 이주와 철거를 거쳐 착공하는 데까지 1년이면 된다는 청사진을 내놓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2.4대책의 공공정비 사업은 공급 측면 자체로는 긍정적"이라면서도 "공급 속도에 대해서는 정부가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아 현실성은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도심의 경우 정비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이주나 철거 과정이 오래 걸리기 마련"이라며 "결국 공급 자체가 되긴 하겠지만, 단기적인 효과보다는 중장기적인 효과 정도만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30만·전국 80만…계획은 창대했지만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계획된 공급량을 달성할지도 관심사다. 도심복합사업은 예비지구 선정을 통해 1만 4000가구의 공급량 확보에 그쳤다. 애초 이 사업을 통한 공급량은 20만가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2.4대책의 다른 주요 사업인 공공재개발·재건축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서울형 정비지원사업인 '신속통합기획(이하 신통기획)'에 밀리면서 더욱 저조한 분위기다. 초반 흥행했던 공공재개발도 지난달 기준으로 총 4곳에서만 주민 동의 요건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규모로는 6000가구 정도에 불과하다.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와 마포구 대흥5구역의 경우 공공재개발에서 신통기획으로 방향을 선회하기도 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2.4대책의 공공 주도 방식은 실제 주택 공급이 되기까지는 최소 5년이라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또 공공주도 정비사업만으로 도심 주택 공급을 활성화하는 데에는 물량 면에서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간 주도의 정비 사업과 조화를 이뤄 '공공 주도'가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만 있다"고 분석했다.
내년 대선도 변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모두 재건축·재개발과 관련, 규제 완화를 시사하고 있다. 규제를 완화하면 공공보다는 민간 주도의 사업추진이 조합원의 자율성 확보나 단지 고급화 등에 더욱 수월하다는 여론이 높아질 수 있다. 이 경우 공공 주도로 도심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2.4대책은 더욱 힘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관련기사:재건축 아파트 볕 들까…안전진단 기준 재검토 첫 언급(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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