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 중에 가장 비싼 깡통, '깡통 전세'를 아시나요? 주택 전셋값이 매매값과 엇비슷하거나 더 높은 전세 매물을 말하는데요.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기 시작하자 주택의 매맷값이 떨어지면서 깡통 전세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까봐 세입자들의 불안감도 점차 커지는 분위기인데요. 과연 내가 사는 전셋집은 안전할까요?
깡통 전세가 생기는 이유
깡통 전세는 집주인의 주택담보대출과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합한 금액이 집값의 80%를 넘어선 물건을 말합니다.
가령 5억원짜리 집이 주담대 1억원, 전세보증금 4억원으로 이뤄진 경우인데요. 사실상 '빚'으로만 이뤄진 집이라 '깡통'처럼 알맹이가 텅 비었다는 뜻으로 깡통 전세라 칭합니다.
이런 집은 보통 '갭투자' 매물일 가능성이 높은데요.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갭·Gap)가 작은 매물을 사들인 뒤 추후 집값이 오르면 집을 팔아 차익을 남기려는 거죠.
갭투자자는 전세가율을 크게 높여서 전세보증금으로 집값의 대부분을 치르는 방식으로 투자를 하는데요.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은 50~70%가 일반적이고 70%가 넘어가면 높다고 봅니다. 한동안 집값 상승기가 이어지면서 이같은 방법으로 집을 사들인 갭투자자들이 많았는데요.
이런 집은 집값이 오를 땐 세입자 피해 우려가 적지만 그 반대의 경우 '깡통'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집값이 떨어지면 집주인은 집을 팔지도 못하고 다른 세입자를 구할 때까지 기존 세입자에게 돈을 돌려주지도 못하기 때문이죠.
집값보다 전셋값이 더 비싼 '역전세' 매물도 깡통 전세 유형 중 하나입니다.
이는 신축 빌라 등 시세를 알기 어려운 물건에서 종종 보이는데요. 빌라는 거래량이 매우 적어 정확한 시세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집값과 거의 동일하거나 더 높은 금액으로 임대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갭투자와 역전세를 활용해 의도적으로 사기를 치는 사례도 있습니다.
최근 사회를 떠들석하게 했던 '세 모녀 사기단'의 사례가 대표적인 갭투자 사기법인데요. 이들은 돈 한 푼 안 들이고 분양대행업자와 공모해 깡통 전세 사실을 숨긴 채 임차인 보증금(총 300억원 상당)만으로 빌라 136채를 사들이기도 했습니다.
깡통 전세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거주 중인 세입자에게 돌아가는데요.
임대인(집주인)이 돈이 없기 때문에 다음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는 이상 임차인이 제때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렵고요. 최악의 경우 집주인이 대출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에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점점 늘어나는 깡통전세…안전 장치는?
최근 금리 인상, 대출 규제, 경기 침체 등으로 매맷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며 깡통 전세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는데요.
부동산R114가 지난달 말 기준 수도권 아파트 337만684가구를 분석한 결과 전세가율 80%가 넘는 아파트는 12만6278가구(3.7%)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아파트 100채 중 3~4채는 깡통 전세라는 건데요. 특히 입주 21~30년 된 아파트의 깡통전세 비율이 59.6%로 가장 많아 오래된 아파트일수록 깡통 전세 위험이 높았습니다.
지역별로 전세가율 80% 초과 비중은 인천이 6.1%(46만1790가구 중 2만8217가구)로 가장 높았고요. 이어 경기 5.5%(172만6393가구 중 9만5558가구), 서울 0.2%(118만2501가구 중 2503가구) 순으로 조사됐습니다.
아파트뿐만 아니라 오피스텔, 빌라 등까지 범위를 넓혀서 보면 깡통 전세가 우려되는 집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전문가들은 이같은 피해를 줄이려면 △시세 및 전세가율 확인 △전세보증보험 가입 △이사 당일 전입신고 및 확정일자 신고 등의 안전 장치를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깡통 전세인지 확인하려면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을 비교해봐야 하는데요. 신축 빌라 등 실거래가 정보가 부족한 주택이면 인근 다른 빌라의 시세를 확인해보고 전세가율이 최소 80% 아래일 때 계약하는 게 좋습니다.▷관련기사:"우리집이 깡통전세?"…'전월세 정보몽땅' 뜯어보니(8월24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서울보증보험(SGI), 주택금융공사(HF) 등의 보증 기관을 통해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해두는 것도 피해 구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일정 보증료를 내고 보험에 가입하면 임대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보증 기관에서 대신 변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죠.
이사하자마자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는 것도 필수입니다. 이렇게 하면 대항력이 생겨서 집주인이 바뀌거나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고 해도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밖에 정부가 이달 1일 '전세사기 피해 방지 방안'에서 발표한 각종 정보와 피해 구제 방법을 활용할 수도 있고요.▷관련기사:'빌라 깡통전세 그만'…악성임대인 공개·적정 전세가 제공(9월1일)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집값 호황기에 큰 폭으로 오른 후 가격이 빠르게 조정되는 단지들도 깡통전세 발생 우려가 있다"며 "요즘처럼 거래가 극히 드문 시장에선 실거래가만으로 정확한 전세가율 파악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시세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