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사전청약 분양 사업 취소로 인한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분양 사업을 포기한 대다수 단지의 피해자 지위승계 등 구제 방안이 나오지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지원 민간임대로 사업 전환을 추진하려는 사업장이 나오며 더 복잡해진 건데요.
분양아파트 용지를 반환하지 않고 방식을 임대로 바꿔 사업을 끌고가려면 '사전청약 당첨자 전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전청약 당첨자가 이를 동의해 주면 기존의 당첨자 지위는 잃게 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구제안이 나오지 않다보니 기존 당첨자도 무엇을 택하는 것이 나을지 가늠할 수 없는 상태인 겁니다.
일각에서는 사업이 아예 취소된 다른 사업장과 비교해 당첨자로서의 권리 승계 등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의 피해자 지위 승계 등 구제조치가 구체화하지 않은 상황이라 자칫 구제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사전청약 분양 단지 임대주택 전환?
1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민간 사전청약 취소 단지는 현재 총 7곳으로 늘었습니다. 제일건설(시행사 제이아주택)이 지난 10월 인천 영종에 짓기로 한 '제일풍경채 영종국제도시(A16BL)' 공급 계약을 취소하면서인데요. 사전청약 당첨 취소 피해자는 87명이 더해져 총 713명으로 늘었습니다.
해당 단지는 본래 지하 2층~지상 21층, 17개 동, 총 1457가구 규모로 계획됐습니다. 2022년 7월 이 중 85%인 1239가구에 대해 사전청약을 실시했고, 총 431가구가 당첨됐습니다. 그러나 건설 자재비 상승 등으로 사업성이 악화하면서 지난해 8월 예정이었던 본청약이 미뤄졌습니다. 시행사는 올해 7월 다시 내년 상반기로 본청약 일정을 미루다 지난 10월에서야 사업 취소를 알렸습니다.
앞서 6곳의 사업 취소 단지들은 계약금(공급가액의 10%)과 가산금리를 위약금으로 내고 공급받은 공공택지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반환했는데요. 제일건설은 택지를 반환하지 않고 해당 부지에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건설을 추진한다는 계획입니다.
당시 공급된 A16BL(운남동 1680-1)은 9만808㎡면적에 전용 60~85㎡ 공동주택용지 1457가구를 공급하는 조건으로 2061억3416만원에 공급됐는데요. 택지를 반납할 경우 제일건설은 200억원 넘는 계약금과 추가 위약금을 내야하는 상황인 겁니다.
제일건설은 이 대신 공사비 상승으로 어려워진 사업을 공공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임대주택을 짓고 차후 분양을 통해 사업성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으로 선회한 겁니다. 이를 위해 앞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주관한 민간제안사업 공모에 참여했고, 지난 10월24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습니다.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은 주택도시기금의 지원을 받아 리츠(REITs)를 설립한 후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시세 대비 95%의 임대료로 10년 이상 장기 임대가 가능하고요. 이후 분양 전환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 수익확보 방안을 찾은 겁니다.
HUG로부터 우협 선정 시 해당 사업장은 기금 출자, 융자, 주택사업금융보증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요. 제일건설은 해당 부지에 1419가구 규모 임대주택을 짓는다는 구상입니다.
제일건설 관계자는 "공공지원 민간임대로 가는 것이 그나마 사업성이 낫다고 판단했다"면서 "사전청약 피해자들의 처우는 국토교통부 등 정부의 구제 방안이 나오면 해당 정책에 발맞춰 나갈 것"이란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어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으로 사업전환을 위해 사전청약자들을 대상으로 동의를 받고 있다"고도 말했어요.

사업전환 시 사전청약 당첨 지위 유지 안돼
그러나 사업전환이 가능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사전청약자(지위 유지) 전체에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다, 사업전환 시 사전청약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지위 승계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LH가 2021년 공고한 공고문(사전청약을 전제로 한 영종하늘도시 공동주택용지 공급공고)에 따르면 '사전당첨자 모집공고 이후 사전당첨자 전원의 동의를 받은 경우에만 전매할 수 있으며, 신탁, PFV(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 등을 통해 주택건설사업을 시행할 경우 사전당첨자 동의서 징구 등 사전 조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LH 관계자는 "분양에서 공공지원 민간임대 등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사전청약 당첨자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라며 "동의 시 사업이 전환됨에 따라 사전청약 당첨자 지위는 포기하는 것(분양 지위가 사라지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리츠 설립을 통한 사업전환 자체가 불가능하고, 반대로 동의 시 사전청약 지위는 소멸하는 것입니다. 사전청약 피해자들이 당첨 지위 승계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당첨지위를 포기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
분양에서 임대주택으로의 전환 자체에 대한 불만도 나옵니다. 사전청약 피해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분양 대신 임대로 전환하라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10년 후 분양가가 불확실하고, 일반 아파트 대비 가격상승에도 제한이 있어 아파트의 장점인 환금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국토부 구제책 마련이 사업진척 관건
결국 사업 전환 등 추진 여부는 국토부 손에 달렸습니다. 국토부가 피해자의 분양 지위 승계 방안 등 구제방안을 내놓지 않을 경우, 사업전환은 물론 취소단지의 신규 사업자를 구하는 것 역시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사업진척이 늦어지며 분양가 상승 등 우려가 커지는 상황인 만큼 건설업계에서도 피해자 구제책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임대로 전환해서라도 사업을 진행하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며 "다만 국토부의 지위 승계 가부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전환을 진행할 경우 자칫 사전청약자들이 보호받을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어 "국토부에서 사전청약자 지위 승계 등 구체적인 구제 방안이 나와야 임대사업 전환 추진이나 취소 택지의 새로운 사업자 모색에도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국토부는 지난 5일 '사전청약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와 만나 지위 승계 요구 등 의견을 청취했는데요. 최근 피해자 구제 방안을 지위 승계가 아닌 우선공급 형태 등 다른 방안으로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사전청약 피해자 지위 승계 여부는 아직 검토 중으로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요.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내년 1월 초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져 사전청약 취소로 멈춰있던 사업 진행이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