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재개발의 시동은 20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은 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 열풍에 휩싸였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시절 시작된 뉴타운 사업은 노후 저층 주거지를 대규모로 정비해 아파트 단지로 바꾸는 프로젝트였다. 지난 2002년, 은평·길음·왕십리 등 시범지구 3곳으로 시작한 뉴타운사업은 후임인 오세훈 시장 임기를 거치며 2007년까지 26개 지구로 빠르게 불어났다.
당시 서울 집값이 급등했기에 가능한 속도였다. 하지만 속도전의 부작용은 컸다. 구역이 빠르게 늘어나는 등 사업에 탄력이 붙었지만 뒷심이 약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이 2008년 당시 뉴타운사업 중간평가를 실시한 결과, 전문가 평점은 100점 만점에 59.5점에 그쳤다. 특히 '원주민 재정착 및 세입자 대책'은 44.6점으로 최하점을 기록한 바 있다.
당시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뉴타운 구역 내 세입자 비율은 69%에 달했지만 임대주택 건립 비율은 전체의 17%에 불과했다. 세입자를 포함한 원주민 재정착률은 10% 안팎까지 떨어졌다. '원주민 재정착률을 제고시켜 다양한 커뮤니티를 조성하자'는 뉴타운 사업의 취지와 동떨어진 결과였다.
관과 민간 사이 동조화가 약했던 것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초기 뉴타운 사업은 시장·구청장이 직접 정비구역을 지정하는 과정에서 주민 동의 절차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사업 단계별로 주민 동의서가 필요한 정비사업 사업 특성상 조합원 반대율이 높을수록 행정은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부동산 시장이 꺾이면서 사업성까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2019년, 서울시의회 의뢰 연구용역 보고서 '서울시 정비사업 출구전략의 한계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이 당시 많은 재개발구역들이 답보 상태에 빠져 사업을 진전시키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기(제33대, 2006년 7월1일~2010년 6월30일) 때 직접 뉴타운위원회를 구성하며 문제 해소에 나섰다. 재선 뒤 무상급식 논란으로 사퇴하기 직전인 2011년 4월에는 '아파트 위주 재개발·재건축을 지양하겠다'는 내용의 '신주거정비 5대 추진방향'을 내걸었다.
여기에는 정비예정구역 중 장기간 사업이 추진되지 않아 갈등이 지속되고 재산권 침해가 발생하는 일부 지역에 한해 정비사업을 해제하겠다는 구상도 포함돼있었다. 실제로 당시 서울시 공고에 따르면 총 31개소를 해제 예정구역으로 발표한 바 있다.
뉴타운 속도전의 부작용과 금융위기의 습격, 서울시의 '탈(脫) 뉴타운' 기조는 그렇게 설상가상 속에 시작됐다. 그리고 민선 5기, 박원순 시장 시기 그 흐름은 더 강해졌다.
[서울 재개발 20년, 그리고…]②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