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코스는 담배 연기 없는 세상을 가져다줄 것이다. - 2017년 5월 17일, 정일우 전 한국필립모리스 대표
3년 전 국내에 생소한 담배가 등장했습니다. 한국필립모리스가 우리나라에는 없던 궐련형 전자담배 제품인 아이코스를 출시한 건데요. 기존 궐련 담배에만 익숙해 있던 흡연자들은 말 그대로 열광했습니다.
편의점에서는 제품 출시 날부터 소비자들이 몰리면서 입고되자마자 품절되는 경우가 많았고요. 일부 편의점에서는 아이코스의 전용 담배인 '히츠'까지 금세 동나면서 소비자들을 답답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아이코스 진출 이후 지난 3년간 국내 담배 시장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담배시장에선 아이코스와 같은 궐련형 전자담배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13%에 달하면서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전자담배 비중이 높아진 만큼 연초 담배에서 나오는 '연기'는 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필립모리스의 공언이 현실이 돼가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필립모리스가 의외(?)의 실적을 내놨습니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 등이 크게 줄어든 건데요. 주변을 보면 여전히 아이코스를 사용하는 흡연자들이 많은 것 같은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요.
우선 지난해 한국필립모리스의 실적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해 매출은 6831억원으로 전년보다 21.5%가량 줄었습니다. 규모로 따지면 아이코스가 출시되던 해인 2016년 수준으로 쪼그라든 겁니다. 영업이익 역시 전년보다 36.3%가량 감소한 442억원에 그쳤습니다.
매출이 줄어든 건 당연히 담배 판매량이 줄었기 때문일 겁니다. 업계에서는 두 가지 원인을 꼽고 있는데요.
먼저 아이코스 기기와 전용담배 히츠의 판매 부진 가능성입니다. 이는 매출액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가늠해 볼 수 있는데요.
한국필립모리스의 매출은 상품매출과 제품매출로 구성돼 있습니다. 상품매출이란 상품을 어디선가 구매한 뒤 재판매한 금액으로 보면 됩니다. 제품매출은 직접 만들어 판매한 거고요.
그간의 추이를 보면 아이코스 출시 이후 2년간 '상품매출'이 크게 늘면서 전체 매출도 증가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코스 기기의 경우 해외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한국필립모리스 입장에서는 완성된 기기를 해외에서 들여와서 팔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코스 기기 판매액은 상품매출로 잡히는데요. 이 매출이 지난해 확 줄어든 겁니다. 아이코스의 기기 판매량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상품매출이 줄어든 다른 이유도 있긴 합니다. 한국필립모리스는 히츠 역시 해외에서 들여와 팔았기 때문에 상품매출로 분류했는데요. 지난해부터 히츠를 국내에서 차츰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제품매출로 잡혀가고 있습니다. 이 경우 자연스럽게 상품매출은 줄고 제품매출은 늘게 되는데요. 실제 지난해 제품매출이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지난해 상품매출이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은 아이코스 기기와 히츠의 판매량이 전반적으로 주춤한 영향일 것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분석입니다.
실제 업계에서는 KT&G가 아이코스 출시 직후 내놓은 '릴'의 점유율이 최근 55%까지 뛰면서 1위 자리를 차지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코스의 점유율이 60~70%에 달했다는 걸 감안하면 경쟁사에 다소 밀리고 있는 분위기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아울러 한국필립모리스가 판매해온 말보로 등 일반 담배 점유율이 계속 줄고 있다는 점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필립모리스는 아이코스 출시를 계기로 '담배 연기 없는 미래'라는 비전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일반 궐련 담배 마케팅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 궐련 담배 판매량도 주춤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간 필립모리스 측은 일반 담배 판매량이 줄어드는 걸 감수하더라도 비전을 실천하겠다고 공언해왔는데요. 실제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필립모리스가 고전하고 있는 와중에 경쟁사인 KT&G의 경우 국내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합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코스의 등장으로 KT&G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는데요. '반전'이 벌어진 겁니다.
KT&G의 국내 담배 매출은 그간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였습니다. 국내 전체 담배시장이 줄고 있기 때문이었는데요. 그런데 2018년부터는 매출이 오히려 반등하기 시작했습니다. KT&G가 내놓은 릴이 꾸준히 성장한 데다가 일반 담배 점유율까지 높아진 덕분으로 풀이됩니다.
업계에선 전자담배 시장에서 KT&G 점유율이 높아진 시점을 '릴 하이브리드' 출시 이후로 보고 있습니다. '릴 하이브리드'는 액상형과 궐련형의 기능을 더해 만든 전자담배 제품입니다. 하이브리드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서 전체 전자담배 점유율을 높였다는 분석입니다. 한국필립모리스 입장에서도 KT&G가 이처럼 발 빠르게 제품군을 확대하며 반격해올지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KT&G는 그러면서 기존 궐련 담배 제품에도 공을 들이기 시작했는데요. 담배 냄새를 줄인 이른바 '냄새 저감' 제품들을 줄줄이 출시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 제품들이 인기를 끌면서 일반 담배 시장 점유율도 높아졌습니다.
결국 필립모리스는 아이코스에만 집중한다는 전략을 구사하다가 국내 시장에서만큼은 곤경에 처한 듯한 모습이고요. 경쟁사인 KT&G의 경우 전자담배는 물론 일반 담배까지 다양한 제품들을 내놓으면서 점유율을 확대하는 모습입니다. 일단 지난해 기준으로는 KT&G가 예상을 뒤엎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두 업체는 독특하게도 해외시장에서 손을 잡기로 했다고 올해 초 발표했는데요. KT&G는 릴을 공급하고, 필립모리스는 이를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는 식으로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필립모리스 입장에서는 이미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KT&G가 좋은 파트너가 될 거라고 판단했을 거고요. KT&G 역시 전 세계에 탄탄하게 짜인 필립모리스의 공급망이 필요했을 겁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앞으로도 두 업체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내 전자담배 시장은 앞으로도 지속해 커질 가능성이 큰데요. 이 시장이 어떤 식으로 확대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각기 다른 전략을 구사해온 두 업체가 국내에서 어떤 성과를 만들어갈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