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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륵' 고용유지지원금…여행업계, 한숨만

  • 2020.11.11(수) 14:14

여행·호텔·면세·화장품·패션 등 연명치료 중
직원이 쉬어야 받는 지원금…"누굴 위한 정책?"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연명하고 있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행업과 관광업, 면세점업, 공연업계와 화장품, 패션업계 등 상당수가 업무는 하지 못하고 고용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고용유지지원금은 경영이 어려워진 사업주가 유급휴업이나 휴직 등으로 근로자의 고용을 유지하면 정부가 휴업·휴직수당의 최대 75%까지 지원하는 제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1514곳의 사업장에서 7만 7088명의 근로자가 고용유지지원금의 혜택을 입었다. 예산은 총 669억원이 쓰였다. 문제는 올해 코로나 19로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사업장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지난 10월 기준 고용유지지원금 지급액은 총 2조 6470억 원이다.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사업장은 8만 2123곳으로 지난해보다 54배 늘었다.

◇ 여행업, 고용유지지원금 없다면 '궤멸'

특히 여행업은 고용유지지원금이 없다면 '궤멸' 수준의 폐업이 예상되는 업종이다. 이미 여행업계 1·2위 하나투어와 모두투어는 무급휴직을 시행하고 있다. 3위 노랑풍선도 예약센터의 운영을 중단한 뒤 감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자유투어와 NHN여행박사, 롯데JTB 등 중견업체들도 고용만 가까스로 유지한 채 실질적인 영업은 멈춘 상태다.

실적은 참담하다. 하나투어는 올해 3분기 302억 4000만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전분기보다는 개선됐지만 누적 손실은 1095억 원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3분기 매출도 100억 원에 불과하다. 누적매출은 1301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78% 줄었다. 모두투어도 마찬가지다. 3분기 영업손실은 74억5000만원이다. 3분기 누적 매출은 502억원으로 전년 대비 78% 감소했다. 업계에 따르면 다른 여행사 대부분도 80% 수준의 매출감소를 겪고 있다. 영업이익을 내는 곳은 전무하다. 

사상 최악의 실적악화를 겪고 있지만 폐업업체 수는 비교적 적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등록된 여행업체는 총 2만 1540개다. 2분기와 비교해 131개 줄었다. 상반기에 612개가 문을 닫은 것과 비교해 폐업하는 업체 수가 줄었다. 업황이 개선된 것은 아니다. 고용유지지원금 덕분에 고용만 가까스로 유지하고 매출이 없는 '좀비' 상태의 기업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 손발 다 떼야 주는 지원금 '논란'

업계에서는 고용유지지원금이 폐업을 막아주는 제도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업황회복에는 '독(毒)'이라고 보고 있다. 고용유지지원금은 직원이 정상적으로 근무를 하면 받을 수 없는 돈이어서다. 만약 회사에 일감이 들어와 고용유지지원금을 통해 휴업수당을 받은 근로자가 업무에 투입되면 부정수급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신규채용도 원칙적으로 불가하다. 결국 업체 대부분이 고용유지지원금을 받는다면 실질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고용유지지원금을 받더라도 사업주의 지출은 계속된다. 현재 고용유지지원금 한도는 휴업·휴직수당의 최대 75% 수준이다. 당초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대 90%까지 줄 수 있도록 지원액을 늘렸지만 4분기부터는 다시 원래대로 되돌렸다. 고용유지지원금으로 지원받지 못하는 수당과 4대 보험료는 사업주가 계속 내야 한다. 일하는 직원이 없어 이익을 창출할 수 없으면서도 지출이 계속된다면 자본금을 계속 까먹게 된다. 이런 상황이 길어진다면 자본잠식과 부도를 피할 수 없다. 

결국 이를 부담하기 힘들 정도로 사정이 나빠지더라도 고용유지지원금을 받는 기간에는 쉽게 폐업할 수도 없다.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고용유지계획서에 고용유지조치 기간을 작성해야 한다. 폐업은 이 기간이 끝나고 1개월 이후에야 가능하다. 만약 이 기간 동안 고용을 유지하지 못하면 받은 지원금의 최대 5배를 징수당한다.

◇ 내년까지 상황 지속 가능…"누굴 위한 조치인가"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며 연명하는 업체는 여행사뿐만 아니다. 영세한 유통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손님이 크게 줄다보니 대형 면세점과 대형 호텔의 협력업체들 상당수도 고용유지지원금을 활용해 가까스로 폐업을 막고 있다. 외국인 의존도가 높았던 화장품 제조업체와 마스크팩 업체들도 처지가 같다. 패션랜드(무자크), 미도컴퍼니(에꼴), 제이에스티나, 무크, 바바라앤코 같은 중견 패션업체들도 고용유지지원금을 받는다.

코로나19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고용유지지원금을 둘러싼 기업들의 연명은 내년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현재 고용유지지원금의 최대 이용 기간은 1년에 240일이다. 당초 180일이었지만 코로나19로 기한을 늘렸다. 올해 5월 이후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은 업체는 연말까지 지원금을 사용한 뒤 연초에 새로 신청하면 내년 8월까지 공백 없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이에 구조조정으로 넘어가야 할 사업체들이 지원금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돈을 한 번 받으면 해당 기간동안 업무를 다시 시작하기 어려워지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사업을 하다보면 당장 매출이 없어도 매출을 늘리기 위해 새로운 상품 개발도 하고, 마케팅도 하고, 영업라인도 관리하는 등 돌파구를 찾기 위한 업무가 있다"며 "매출이 떨어졌다고 직원이 쉬어야 한다면 고용유지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19가 끝나고 정부 지원이 없어지면 그렇게 정체되어 있던 회사가 무슨 경쟁력이 있겠냐"면서 "아까운 인재를 놀려 놓고 돈을 주는 이런 제도가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한 행정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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