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카드가 체크카드를 발급할 때 돈을 받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전업계 카드사 중 처음입니다. 무분별한 체크카드 발급을 막기 위해서라는 설명인데요. 업계에서는 본격적인 비용 줄이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소비자들은 다른 카드사도 수수료를 매기는 게 아니냐며 술렁이고 있습니다.
하나카드는 내달 6일부터 체크카드 발급에 수수료 2000원을 부과할 예정이라고 공지했습니다. '카드사는 카드 이용대금에 우선해 연회비 및 카드 발급수수료를 징수할 수 있다'는 체크카드 개인회원 약관 제3조의 1항에 근거한 조치입니다.
체크카드를 발급받으면 연계 계좌에서 수수료가 빠져나가게 되는 식인데요. 다만 올해까지는 발급 이후 다음 달까지 1만원 이상 체크카드를 쓰면 발급수수료를 되돌려(캐시백)주는 정책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사실상 유예기간을 둔 뒤 시행하겠다는 말로 들립니다.
체크카드 발급이 공짜가 아닌 경우는 종종 있었습니다. 씨티은행은 체크카드를 발급할 때 5만원 가량을 받고, 카카오뱅크는 재발급시 2000원을 청구합니다. 하지만 전업계 카드사 중 발급수수료를 매긴 건 하나카드가 처음입니다.
하나카드는 체크카드의 무분별한 발급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캐시백 기준을 1만원으로 잡은 것도 발급 이후 1만원조차도 쓰지 않은 카드에는 이용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뜻이 담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카드사가 플라스틱 카드 제작을 외부에 의뢰하고 이를 받아 고객에게 배송하는 경우 4000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요즘 체크카드엔 신용카드 못지않은 할인혜택 등이 붙는데 연회비가 없다면 비용은 고스란히 카드사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른 부작용은 만만치 않습니다. 일부 이용자는 카드 수집을 명분 삼아 복수의 체크카드를 발급받기도 하고요. 관리 소홀로 한 달에도 몇 번씩 재발급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나카드는 카드 발급에 드는 비용 일체를 판매관리비로 계상해 관리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하나카드의 판관비는 2983억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3.7% 증가했습니다. 각종 수수료로 거둬들인 수익 774억원의 4배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카드 발급 비용이 포함된 용역비는 판관비의 3분의 1 가량에 해당하는 954억원 정도입니다.
상당한 출혈에도 불구하고 비용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카드업계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입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작년 9월 말 현재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한 명당 카드 3.8장을 갖고 있습니다. 쇼핑하듯 카드사를 고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체크카드에 발급수수료를 매기면 고객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고 걱정했을 겁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체크카드 발급수수료 부과를 카드사의 허리띠 졸라매기 신호탄이라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정책 시행 시점 자체가 업황이 한창 어려운 시기인 데다가, 소비자 반발을 걱정하면서까지 정책을 밀어붙인 것이 비용 줄이기 외에 다른 목적이 있겠냐는 겁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관련 업계 관계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봤을 이슈"라면서도 "전업계 카드사 안에서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수수료를 부과한다는 측면에서 소비자 반발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적지 않은 부담감을 갖고 발표에 나섰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카드사 사이에선 가뜩이나 가맹수수료 수익이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 되레 카드사의 주수익원인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이용이 감소했다는 푸념이 나옵니다. 여기에 간편결제를 앞세운 IT업계의 공세로 카드사들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데요. 카드사들도 마이데이터 사업과 같은 신시장 개척에 뛰어들었지만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낼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형사와 소형사 모두 비용 줄이기를 화두로 꼽습니다. 하나카드의 체크카드 발급수수료가 업계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아직까지 다른 전업계 카드사는 발급수수료 부과 계획이 없다고 하고 있는데요. 두고 볼 일입니다.
현재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다른 곳도 하나씩 수수료를 매기기 시작할 것"이라는 글이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설사 검토를 했다고 하더라도 발급수수료 부과 여부를 지금 당장 말하긴 어렵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