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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맥경화' 바이오…"연구보다 버티는 게 우선"

  • 2022.11.23(수) 06:50

R&D 지출로만 1년 버티기 힘든 기업 9곳
올해 3분기 '연속' 바이오 VC 투자금 감소
자금난 장기화 우려…"내년 회복" 시각도

/그래픽=비즈니스워치

국내 바이오 업계의 현금 보유고가 빠르게 줄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며 글로벌 제약사(빅파마)도 지갑을 닫았다. 자금 조달 역할을 하는 벤처캐피털(VC) 역시 투자에 소극적으로 돌아섰다. 바이오 산업은 신약 연구개발(R&D), 임상시험 등에 대규모 비용이 필요하다. 자금난이 이어지면 산업 자체가 침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비즈니스워치가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상위 70개 바이오 기업의 현금 보유액을 집계한 결과, 3분기 말 기준 이들 기업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은 4조7894억원이었다. 3분기 누적 R&D 비용은 총 9540억원을 지출했다.

특히 기업별 편차가 컸다. 조사 기업 중 24곳은 추가 자금 조달이 없으면 R&D 비용 지출로만 3년 내 보유 현금이 바닥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1년을 채 버티기 어려운 기업도 9곳에 달했다. 3분기 말 기준 현금 자산을 올해 누적 R&D 지출로 나눠 단순 계산한 결과다. 여기에 인건비 등 판매관리비, 달러/원 환율 상승으로 인한 해외 임상 비용 부담 등을 고려하면 자금 고갈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바이오 업계에선 기업들의 자금난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국내 바이오 기업의 주요 수익원인 기술이전(L/O) 시장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시중 유동성이 줄어들면서 빅파마도 투자를 줄이는 분위기다. 경기 침체를 대비해 기술도입과 인수·합병(M&A)에 쓸 비용을 줄이고 현금을 비축하려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실제 올해 국내 바이오 업계의 L/O 실적은 전년보다 대폭 쪼그라들었다. 22일 기준 올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총 13건의 L/O 계약을 체결했다. 총계약 규모는 4조7000억원이었다.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L/O 실적(34건·13조3000억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임상 초기 단계의 신약 후보물질을 빅파마에 L/O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해왔던 국내 기업 입장에선 돈을 벌 길이 사라진 셈이다.

또 바이오 기업에 자금 조달 역할을 하는 VC까지 투자에 소극적으로 돌아섰다. 최근 국내 바이오 기업의 기업공개(IPO) 문턱이 높아진 탓에 VC의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졌고, 이에 따라 VC 투자도 감소했다는 분석이다. IPO는 국내 VC가 투자금을 회수하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으로 꼽힌다. 올해 상장한 바이오 기업은 8곳으로, 지난해(16곳)보다 50%가량 줄었다. 상장을 연기하거나 철회하는 기업도 증가하는 추세다. 앞선 지난 21일 임상시험수탁기관(CRO) 바이오인프라는 상장을 철회했고, 코스닥 상장에 나섰던 퓨처메디신은 코넥스로 눈을 돌렸다.

이에 바이오·의료 업종에 대한 VC 투자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KVCA)에 따르면 3분기 국내 VC의 바이오·의료 업종 신규 투자금은 2029억원이었다.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해 반토막났다. 같은 기간 전체 투자금에서 바이오·의료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도 18%에서 15%로 줄었다. 바이오·의료 업종은 지난 2018년부터 3년 연속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왔지만, 올 상반기 ICT서비스와 유통·서비스에 각각 1, 2위 자리를 내줬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보통 신약 개발은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시험, 최종 허가까지 10년 이상이 걸린다. 평균 R&D 비용만 1조원에 달한다. 대규모 자금이 꾸준하게 투입돼야 하는 산업 특성상 현금 흐름이 막히면 산업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바이오 주가 부진으로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주식연계채권의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 행사도 늘고 있다. 잉여자금이 부족한 바이오 기업의 줄도산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바이오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돌입한 모습이다. 임상 파이프라인을 축소하는 것은 물론 인력을 줄이거나 실험 장비나 공장 등을 매각하는 기업도 생겼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가파른 금리 인상 등으로 시장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노바티스, 머크 같은 글로벌 제약사도 대규모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면서 "국내 바이오 업계에서도 신약 개발을 성과를 내는 것보다 일단 살아남는 게 실력이라는 얘기가 돌 정도"라고 말했다.

다만, 내년부턴 L/O 시장이 다시 활발해질 것이란 시각도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는 데다 파이프라인 가격이 낮아지면서 계약 체결 가능성도 커졌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 트렌드는 계속 변하고 있고 기업이 장기적으로 성장하려면 새로운 기술도입이 필수인 만큼 빅파마도 신규 투자처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바이오 기업들에겐 어려운 시기지만 그동안 높은 가격 탓에 체결되지 못했던 L/O 계약이 제 가격을 찾아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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