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금융위원장 내정자는 현재의 금융시장 불안에 '복합위기'(複合危機)라는 진단명을 내렸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상황에 따른 정책대응 후유증, 국제정치적 구도변화에 따른 파급영향이 얽혀 있는 현재 세계의 경제상태"가 그가 말하는 복합위기다. 김 내정자는 "앞으로의 전개 과정도 과거와 또 다른 새로운 양상일 것"이라고 했다.
청문회는 무난히 거칠 것이라는 게 안팎의 관측이다. 하지만 그 뒤 금융위원장에 올라 맞닥뜨릴 현안은 하나하나가 그의 시장 진단 만큼이나 녹록지 않다. 19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문제와 코로나 속에 금융으로 어려워진 계층을 함께 다뤄야 한다. 또 급변하는 금융 시장과 산업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흐름 속에서 금융 안정을 확보하는 동시에 혁신도 이끌어야 한다.
막대한 가계부채가 가장 먼저다. 김 내정자는 7일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것이 좋은 현상은 아니다"라고 했다. 경기가 급격히 얼어붙으면 가계에서부터 연체 도미노가 시작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성장은 정체된 와중에 물가마저 뛰고 있어 경기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터라 다루기 더 어려운 고차방정식이다.
그는 "변동성이 커지면 갚을 수 있는 범위에서 돈을 빌린다는 점에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기본적인 정신 취지를 유지하며 이끌어나가려고 한다"고 했다. 건전성 관리에 더 무게를 싣겠다는 게 기본입장인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LTV(부동산담보대출비율)을 80%까지 높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불투명해진 경기 속에 가계부채 리스크 관리와 실수요자를 위한 규제완화를 동시에 해야하는 게 윤석열 정부 '경제 원팀'의 허리가 돼야할 그의 첫 몫이다.
미루고 미뤄진 코로나 만기 연장의 출구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연장을 거듭했던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인에 대한 금융 지원 종료 이후 연착륙 방안이다. ▷관련기사: 코로나19 대출 만기연장, 9월까지 연기(3월23일)
정부는 지난달 한국자산관리공사를 통해 빚을 탕감해주고 기존 고금리 대출 상품을 저금리 상품으로 대환하는 등의 지원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133조원 넘는 중소상공인 대출 규모를 고려하면 이 정도로 충분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당장 시중 금리는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어 금리 정상화에 따른 충격파도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급변하는 금융 산업 환경에 따른 제도개선도 시급하다. "금산분리와 전업주의 등에 대해서도 손을 댈 수 있다"는 게 그가 밝힌 입장이다. 국내에서는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사를 소유할 수 없고 은행도 정보기술(IT) 회사 등 다른 업종의 회사를 소유할 수 없는 게 현재의 금산분리다.
김 내정자는 "산업이 금융을 하는 것, 금융이 산업을 하는 것의 비중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면서 "어느 쪽이든지 결합됨으로써 공정 경쟁을 해치고 피해가 발생하는지 등 논의 결과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 조정할지 결정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도 금산분리에 대한 요구 수위가 높다. 하지만 금산분리에 칼을 대려면 '그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리다'고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반대 여론을 설득할 수 있다. '삼성은 안 되고, 카카오나 네이버는 되는', 경계가 허물어진 시장 환경을 토대로 새 원칙을 세워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게 숙제다.
그가 받은 숙제는 이뿐 아니다. 암호화폐 시장의 급팽창, 갖가지 횡령이 빈발하는 금융권의 모럴해저드 등으로부터 금융 안정을 지켜내는 것도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김 내정자는 금융정책과 시장, 금융 산업을 두루 경험한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저축은행 사태, 우리금융 민영화 등 굵직한 고비 때마다 금융위와 예금보험공사 등 주어진 위치에서 맥을 잘 짚어 풀어냈다는 이력은 이번 인선의 가장 큰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 여신금융협회 회장 등 내정 직전 전까지 있었던 민간 이력은 중립성 면에서 지적받는 부분이다. 3년 임기를 잘 치러낸 미래에 그가 이런 결점까지 장점으로 평가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