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는 한국 화장품을 의미하는 게 아니예요. 세계 어떤 화장품을 쓰더라도 표현할 수 있는 한국만의 미(美)적 노하우입니다. 전지현이 '별그대'에서 바른 입생로랑 립스틱이 K뷰티가 되는 것처럼요. 사드 보복 때문이 아니더라도 K뷰티 다음을 봐야 합니다. 중국의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K뷰티를 재해석해 'C뷰티(China 뷰티)'를 만들어 나가도록 레페리가 함께 할 겁니다."
▲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소재 레페리 본사에서 최인석 레페리 대표를 만났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레페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뷰티 전문 MCN(멀티채널네트워크) 기업이다. MCN은 온라인 1인 방송인(크리에이터)을 양성·관리하면서 이들과 브랜드 콜라보 등을 통해 광고 수익을 거두는 일종의 소속사 수익 모델이다. 아직은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MCN은 국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산업 가운데 하나다. 한국전파진흥협회에 따르면 국내 주요 MCN 기업들은 2014~2015년 사이 문을 열고 최근 2~3년간 전년대비 적게는 두자릿수에서 많게는 7000%(캐리소프트)의 매출 성장률을 나타내고 있다.
레페리는 뷰티 크리에이터만을 전문적으로 양성·관리한다는 점에서 MCN 업계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구축했다. 국내·외 크고작은 화장품 제조사들이 앞다퉈 레페리와 브랜드 콜라보를 진행하는 이유다. 최인석 레페리 대표를 만나 창업부터 지금의 뷰티 전문 MCN으로 성장하기까지 이야기와 앞으로 레페리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들었다.
최 대표가 레페리를 창업하게 된 건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 제대 직후 파워블로거 모임에서 만난 뷰티 블로거들이 지금의 레페리를 만들게 한 계기가 됐다. 2011년 당시는 아모레퍼시픽 등 국내 화장품 브랜드의 고급화 전략이 성공함에 따라 그간 두자릿수 성장세를 이어오던 해외 명품화장품이 하락기로 접어들던 때다. 최 대표는 해외 명품화장품의 판매성장세가 꺾인 요인중 하나가 백화점에 공급이 줄어든 때문으로 보고, O2O(Online to Offline) 방식의 화장품 유통모델로 창업 도전장을 냈다.
하지만 쓴 맛을 봐야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경험이 성공의 발판이 됐다.
"테헤란로 근방에 명품화장품 기업들의 본사가 많아요. 판로를 뚫겠다고 무작정 찾아가도 보고, 배달원으로 변장해 들어가 부탁도 해보고…별의별 걸 다 해 봤는데, 번번이 거절만 당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유통 담당자에게 '뷰티 파워블로거 친구가 20명 있다'고 하니까 눈빛이 바뀌는 거예요. 그때를 계기로 '파워블로거 지인들을 공식적으로 소속화 해보자'한 게 무형의 MCN, 지금 레페리의 초기 모습이 됐습니다."
최 대표는 초기 사업모델의 실패를 통해 파워블로거가 가진 영향력을 크게 실감했다. 3년간 매달린 O2O 서비스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갑작스럽게 고안해낸 MCN 사업모델이 최 대표에게 반전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최 대표는 콘텐츠진흥원이 개최한 창업대회에서 초기 MCN 사업모델을 발표한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구글 동아시아 담당자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곧바로 담당 임원과의 면담을 거쳐 이는 투자로 이어졌다. 2014년 8월 레페리의 뷰티 크리에이터 교육 프로그램 1기생 모집은 그렇게 첫발을 뗐다.
'뷰티 크리에이터 100명을 키운다'는 야심찬 목표로 시작한 교육프로그램은 목표를 훌쩍 넘겨 지금까지 300여명의 뷰티 크리에이터들을 배출했다. 프로그램 초기에는 지원자가 없어 최 대표가 일일이 연락해 설득하면서 간신히 20여명을 모았다. 하지만 최근 레페리가 에뛰드하우스와 함께 진행한 프로그램에는 30명을 뽑는 자리에 1400명이 지원해 47대 1 수준의 높은 경쟁률로 마감했다. 3월 현재 85만명 가까운 구독자를 보유한 스타 뷰티 크리에이터 '다또아'와 35만여 구독자를 가진 '킴닥스' 등 모두가 레페리 교육생 1기 출신이다. 레페리는 이 같은 인기에 힘을 얻어 작년부터는 중국을 중심으로 해외 뷰티 크리에이터 육성에도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다또아와 유나 등 2명의 크리에이터는 이미 중국에 진출해 중국 상거래서비스 '타오바오'에서 개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크리에이터는 크게 연예인형과 쇼호스트형 등 2가지로 나뉩니다. 한국 크리에이터 대부분이 연예인형이라면 중국은 쇼호스트형이 훨씬 많은데요. 양쪽 모두에 장·단점이 있어요. 한국 크리에이터들의 경우 영상의 퀄리티가 높지만 얼마만큼 파느냐에 관심이 덜 하고요. 중국 크리에이터는 그 반대예요. 레페리가 하려는 건 양쪽의 장점들을 합쳐주는 겁니다."
▲ 레페리 교육 프로그램 1기생 출신으로 중국에 진출한 뷰티 크리에이터 다또아. 사진/레페리 |
최 대표는 한국과 중국의 뷰티 크리에이터 문화가 다른만큼 한·중의 MCN 시장 또한 달리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MCN 사업 모델로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한국과는 다른 중국의 미적 기준도 고려해야 할 요소라고 꼬집었다. 국내의 경우 이웃집 언니와 같은 크리에이터들이 인기지만 중국에서는 안젤라 베이비 등 화려한 외모를 가진 크리에이터들이 인기를 얻는다는 조언이다.
레페리는 이 같은 문화적 차이 등을 감안해 중국 로컬화에 주력하고 있다. K뷰티에 중국만의 미적 감각을 녹여내 'C뷰티' 창조에 일조한다는 목표다. 이는 사드보복이 아니더라도 중국에서 K뷰티의 인기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최 대표는 "최근 중국에 진출한 한국 화장품 기업이 타격을 받는건 우려스럽지만, 사드가 아니더라도 K뷰티의 인기가 계속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차후 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는 'C뷰티'를 일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아울러 MCN이 뻗어나갈 수 있는 다양한 성장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흔히 MCN이라고 하면 콘텐츠를 만들어 광고 수익을 내는 기업 정도로 여기지만, MCN은 1인미디어 선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커머스 등 다양한 영역으로 파생·발전해나가는 과정에서 뷰티 크리에이터들이 현재의 방문판매원 보다 더 큰 매출을 내는 '디지털 방판사원'이 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화장품 제조사로서는 놓칠 수 없는 판매채널이 되는 셈"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