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플랫폼이 B2B(기업간 거래)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B2C(기업-소비자간거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B2B 시장은 B2C 시장에 비해 높은 안정성과 성장세를 갖췄다. B2B 시장에서 획실한 입지를 차지한다면 지속가능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B2B 시장에서 배송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시장 내 지배적 사업자도 많지 않아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다만 미래는 아직 알 수 없다. B2B 시장의 프로세스는 B2C 시장과 다르다. 속도보다 안정성이 우선이다. 거래 규모도 B2C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재고 관리 등에도 투자가 필요하다. 다양한 이커머스 플랫폼이 시장에 진입할 경우 또 다른 '출혈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커머스, B2B 시장 '정면 조준'
쿠팡은 지난달 특허청에 '쿠팡비즈' 상표권을 출원했다. 이 상표권에는 가격비교 서비스업, 가구·과자 소매업 등이 포함됐다. 업계에서는 쿠팡비즈가 중소사업자 등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소모품을 판매하는 'MRO' 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 고객 대상으로 판매 채널을 확대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쿠팡은 쿠팡비즈 론칭에 앞서 음식점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B2B 서비스 '쿠팡이츠딜'을 정식 론칭했다. 쿠팡이츠딜은 쿠팡이츠 입점 업체 중 높은 평점을 받거나 빠른 배달을 수행한 매장에 신선식품과 식자재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서비스다. 배달의민족도 '배민상회'를 통해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커머스 업계는 쿠팡 이전에도 B2B 시장 공략을 시도해 왔다. 이베이코리아는 지난 5월 210만 명에 달하는 사업자 고객을 위한 전용 멤버십 '스마일클럽 비즈'를 론칭했다. 이 서비스는 개인 고객 대상 '스마일클럽'을 확대한 서비스다. 전용 페이지에서 사업자 고객에게 별도의 할인 및 정기공급 혜택 등을 제공한다. 11번가, 티몬 등도 유사한 서비스를 운영해 왔다.
다만 쿠팡과 이베이코리아는 B2B 사업에 '확장성'을 강조하고 있다. 소모품 납품을 넘어 식자재·물류 등 모든 분야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실제로 강희석 이마트·SSG닷컴 대표는 최근 열린 이베이코리아 올핸즈미팅에서 "향후 B2B 사업에서 다양한 시스템 구축을 통해 플랫폼·물류·광고 등 통합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B2B 시장을 주목하는 이유
이커머스 플랫폼에게 B2B 시장은 '블루 오션'이다. 코로나19로 B2C 이커머스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시장 성장에도 적자가 지속하는 등 출혈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네이버·쿠팡·신세계(이베이코리아) 등 거대 플랫폼에 대항하기 위한 중위권 플랫폼들의 '합종연횡'도 활발하다. 때문에 출혈 경쟁 구도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반면 B2B 이커머스 시장에는 아직 '큰 틀'이 없다. 약 30조원 규모 시장이 형성돼 있는 MRO 시장에서 아이마켓코리아·서브원 등 주요 플랫폼의 점유율은 5~10% 수준이다. 식품·공산품 등 B2B 이커머스 시장에도 '절대강자'가 없다. CJ제일제당·hy 등 기업이 B2B 사업을 전개하고 있지만 중소업체의 비중이 타 시장 대비 높다. 거대 B2C 이커머스 플랫폼이 파고들 틈이 충분하다.
시장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오는 2027년 글로벌 B2B 이커머스 시장 규모가 20조9000억 달러(약 2경417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19년 대비 71% 성장한 수치다. DHL은 전체 이커머스 시장에서 B2B의 비중이 8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기업 시장에서 이커머스의 편의성을 주목하고 있어서다. 국내 시장에서도 이런 흐름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B2B 시장은 안정성 측면에서도 B2C 시장에 비해 우수하다. 기업들은 특정 업체와 대규모 구매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방식을 선호한다. 거래를 성사시키기만 한다면 장기간 계약을 이어갈 수 있다. 또 상품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만큼 가격도 유연하게 협의할 수 있다. B2C 시장에서 '최저가 경쟁'과 소비자 록인(Lock-in)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B2C 이커머스 플랫폼 입장에서는 B2B 시장을 외면할 이유가 없다.
'장밋빛 전망' 아직 금물
국내 B2C 이커머스 플랫폼이 B2B 시장에서 가져갈 수 있는 강점은 '배송'이다. 코로나19 이후 B2C 이커머스 시장은 배송 경쟁이 지배했다. 각 플랫폼이 역량 강화에 집중한 결과 기업이 밀집해 있는 도시 권역 대부분이 '1일 배송권'이 됐다. 대부분 B2B 업체의 배송 기간은 1주일 내외다. 이런 배송 경쟁력이 기업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
또 일부 플랫폼은 상품을 미리 구비해두고 배송하는 '풀필먼트 시스템'도 보유하고 있다. 풀필먼트 서비스 대상 상품도 공산품에서 식품까지 다양하다.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이 필요한 외식 시장 등에서 환영받을 만한 강점이다. 또 물류 역량을 앞세워 원자재 생산업체 등을 자사 플랫폼 내로 편입시킬 수도 있다. 추후 관련 사업을 확대할 때 이들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다만 아직은 성공을 점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B2B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의 규모는 B2C 시장을 뛰어넘는다. 상품을 공급할 수 있는 업체도 한정돼 있다. 자체 생산시설이 없는 이커머스 플랫폼은 이 격차를 따라잡기 어렵다. 나아가 공급 역량을 갖춘 기업 대부분은 스스로 B2B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자칫 이커머스 플랫폼의 B2B 사업이 이들 기업의 '보조 물류망'을 제공하는 것에 그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배송을 제외한다면 B2C 이커머스 플랫폼이 B2B 시장을 공략할 만한 큰 장점이 없는데다, 기업들은 계획 하에 물품을 조달하는 만큼 배송 속도에 연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많은 플랫폼이 시장에 진출하면 출혈 경쟁도 펼쳐질 수 있고 상품 생산이나 보관을 위한 추가 투자도 필요할 만큼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