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유통]은 비즈니스워치 생활경제부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주간유통]을 보시면 한주간 국내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벌어진 핵심 내용들을 한눈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편집자]
그날의 다른 기억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지만 기억은 다릅니다. 나는 분명히 이야기했는데 상대방은 기억이 없다고 합니다. 나는 이 정도면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여겼는데 상대방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합니다. 답답할 노릇입니다. 누구 말이 맞을까요? 진실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남양유업 매각을 둘러싼 진실공방이 점입가경입니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과 한상원 한앤컴퍼니 사장의 진술 내용이 정반대로 엇갈리고 있습니다. 남양유업 매각의 쟁점은 분명합니다. 홍 회장은 분명 매각 조건에 '백미당 분사와 오너 일가에 대한 예우'를 포함했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한 사장은 매각 조건에 그런 것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고 재차 확인까지 거친 사안이라고 항변합니다.
홍 회장과 한앤컴퍼니는 현재 법정 공방 중입니다. 최근 이번 매각 계약의 당사자인 홍 회장과 한 사장이 직접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했습니다. 그 내용이 사뭇 다릅니다. 앞서 이번 계약에 중간 다리 역할을 했던 함춘승 피에이치컴퍼니 사장의 증언을 통해 홍 회장의 요구 내용이 드러났습니다. 열 번 양보해서 남편, 아버지 개인으로서 요구할 만한 사안이라고 해도 3000억원이 넘는 M&A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이었죠.
문제는 그 요구를 매각 계약 전에 한앤컴퍼니가 인지하고 받아들였느냐 여부에 있습니다. 만일 이미 인지하고 계약 조건에 포함된 것이라면 계약서 상에도 명시가 됐어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계약서에는 그와 관련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홍 회장은 분명 그 계약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조건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요?
'2021년 5월 11일'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해 5월 11일은 이번 건에 있어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홍 회장과 한 사장이 남양유업 매각을 논의하기 위해 처음 만난 자리입니다. 이미 사전에 함 사장을 통해 양측에 매각을 위한 조건이 전달됐습니다. 양측은 그 조건에 합의했고 이를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찜찜하게 남아있던 것이 있었습니다. 백미당 분사에 대한 홍 회장의 의견이 명확하지 않았던 겁니다.
함 사장은 사전에 홍 회장에게 백미당 분사에 대한 의견을 물은 바 있습니다. 백미당은 홍 회장의 부인인 이운경 고문이 애착을 갖고 있는 곳입니다. 현재 홍 회장의 차남인 홍범석 상무가 이끌고 있습니다. 함 사장은 이 고문이 백미당에 대한 애착이 큰 것을 알고 있었던 만큼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홍 회장에게 물었습니다. 하지만 홍 회장은 '우물쭈물'했습니다.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던 겁니다.
남양유업 매각에 있어 백미당은 큰 부분은 아닙니다. 그런 만큼 큰 틀에서 매각 전반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한 자리가 지난해 5월 11일 그 자리였습니다. M&A로 잔뼈가 굵은 한 사장은 미심쩍은 부분에 대해 확인하고 넘어가야 했을 겁니다. 한 사장은 그날, 그 자리에서 매각 대상은 남양유업 전체였고 백미당 분사에 대해 재차 물었지만 홍 회장은 아무 답변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홍 회장은 왜 함 사장과 한 사장의 백미당 분사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함 사장의 증언에 따르면 홍 회장은 부인인 이 고문이 백미당을 운영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민의 과정에 있었고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한 채 계약서에 사인을 한 겁니다. 대신 머릿속에는 계속 남아있었을 겁니다. '이걸 해결했어야는데…'. 하지만 버스는 이미 떠났습니다.
"관심 없다"더니…돌변한 태도
한앤컴퍼니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노릇입니다. 홍 회장이 백미당 분사에 대한 입장이 분명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때 함 사장을 통해 메시지가 전해집니다. 홍 회장이 한앤컴퍼니와 계속 매각을 진행하라고 했다는 겁니다. 한 사장은 다시 묻습니다. 백미당은 어떻게 할 것인지 말이죠. 양측을 중개했던 함 사장도 홍 회장에게 물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관심 없다"였습니다.
이후 남양유업 매각은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부분이 여러 번의 확인을 통해 명확해졌다고 판단한 한앤컴퍼니는 매각 협상을 이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홍 회장 측은 수차례 가격 인상을 요구했습니다. 한앤컴퍼니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오랜 기간 남양유업을 짓누르고 있던 '오너 리스크'를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남양유업 인수 후 재매각할 때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협상 끝에 한앤컴퍼니는 홍 회장과 그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남양유업 지분 전량을 주당 82만원에 인수키로 하고 계약을 맺었습니다. 애초 한앤컴퍼니가 홍 회장에게 제시했던 가격은 주당 70만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일이 터집니다. 홍 회장이 매각을 위한 대전제가 이행되지 않았다며 몽니를 부리기 시작한 겁니다. 대전제는 백미당 분사와 오너 일가 예우였습니다. 분명 "관심 없다"고 했던 일인데 말이죠.
홍 회장은 이번 재판에서 지난해 5월 4일 대국민 사과 발표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가슴이 찢어졌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죄책감이 컸다"고 했습니다. 홍 회장은 그 죄책감을 씻는 것의 일환으로 백미당 분사와 오너 일가에 대한 예우가 반드시 지켜져야 매각에 나서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그가 매각 과정에서 보여줬던 태도와는 다른 '명확한' 입장입니다.
그렇게 중요했다면
한 사장은 항변합니다. 그는 "만약에 주식회사를 파는 일이 아니면 회사 내 부서를 분리하기 위해선 액면분할, 물적분할이나 자산매각 중 선택할 수 있다. 이는 회계법인을 불러서 세무자문을 받아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빨리 뭘 파는지 확인했던 것이고 홍 회장이 백미당을 원치 않는다고 하니까 더 이상 논의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홍 회장은 매각 과정 내내 '조용히 빨리' 매각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장의 말대로 홍 회장이 백미당을 분사하려 했다면 이런 과정에 대해 묻고 확인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안일했습니다. 그에게 매각 계약은 곧 자신이 명확한 의사 표현을 하지 않은 전제조건을 상대가 인정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인 겁니다. 인정하지 않았으면 협상 자리에 나오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이 홍 회장의 논리인 겁니다.
실제로 홍 회장은 매각 계약 서류 어디에도 백미당 이야기가 없는 이유에 대해 "뭐 필요하겠나. 5월 11일 만남 전에 함 사장이 한 사장한테 다 확인받은 사항이고 오케이가 됐기 때문에 11일에 한 사장을 만난 것이지 그게 오케이가 안됐으면 한 사장을 왜 만나겠나"고 말했습니다. 같은 날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만나 서로 다른 이야기를 했던 것일까요.
현재 재판에서 드러난 일들로만 종합해 보면 홍 회장은 이번 매각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이라면 더욱 꼼꼼히 체크하고 확인했어야 합니다. 자신이 안일하게 대처했던 책임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 겁니다. 재판 과정에서 숨어있던 많은 일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제 재판부는 어떤 판단을 내릴까요.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