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택배 없는 날.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A씨는 편의점 CU 앱에서 편의점 택배를 예약하고 할인쿠폰을 사용해 회원접수를 했다. A씨는 "급하게 택배를 이용해야 했는데, 택배 쉬는 날이라고 해서 걱정했다"며 "다행히 편의점 택배를 이용해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 파주에 거주하는 B씨도 편의점 GS25 앱을 이용해 반값택배를 신청했다. 평소에도 편의점 택배를 자주 이용하는 B씨는 "저렴한 가격에 미리 예약해두면 할인 받을 수 있고 주로 중고거래를 하는 주말에도 가능해서 좋다"라며 "자세한 주소 정보를 입력하지 않아도 되는데다 집 근처 GS25와 GS더프레시에 맡기면 돼서 종종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택배 없는 날 편의점 자체 택배의 이용량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CJ대한통운, 한진, 우체국택배, 롯데글로벌로지스(롯데택배) 등의 택배사들이 택배기사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택배 없는 날을 진행한 가운데, 이에 참여하지 않는 쿠팡이나 컬리보다 접근성이 뛰어난 편의점으로 택배 수요가 더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편의점 택배 이용건수 '쑥'
29일 업계에 따르면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는 지난 14일 '알뜰택배' 이용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342% 증가했다. GS리테일의 편의점 GS25도 '반값택배'의 지난 14일 접수 건수가 전주 동일 대비 71% 늘었다.
CU 알뜰택배와 GS25 반값택배는 각 사 점포에서 택배 발송을 접수하고 택배를 받는 수신자가 해당 브랜드의 다른 점포에서 택배를 찾아가는 서비스다. 알뜰택배와 반값택배는 각 사 점포에 상품을 공급하는 물류배송 차량을 활용한다. 반면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로젠택배, 롯데택배, 우체국택배 등의 택배는 배송기사가 고객이 접수하는 주소에서 택배를 수거하고 물류센터를 거쳐 각 배송지로 배송하는 구조다.
CU는 택배 없는 날을 포함, 지난 7~20일 토스나 번개장터에서 알뜰택배를 예약하면 500원을 할인해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BGF리테일 관계자는 "택배 없는 날 일반택배를 대체하는 수요가 컸다"며 "13일 일요일, 15일 공휴일까지 겹치면서 우체국택배 등을 접수하지 못한 고객들이 편의점 택배로 많이 유입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GS리테일 관계자도 "반값택배의 경우 일반택배의 반값에 접수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 최근 2~3일 내로 배송도 가능해 고객들이 일반택배를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값택배는 GS25 택배 접수 구성비 중 40%를 차지한다.
편의점 택배 이용 늘어난 이유
택배 없는 날은 택배기사들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지난 2020년 지정됐다. 온라인 쇼핑이 대중적으로 자리잡으면서, 국내 택배 물동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에 따르면 국내 택배시장 물동량은 2012년 14억개에서 2016년 20억개를 돌파했고,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엔 33억7000만개를 넘어섰다. 지난해엔 41억2000만개를 기록했다.
배송기사들은 일반적으로 주 5~6일 수백개의 택배물량을 배송한다. 배송기사가 휴가를 가려면 하루 25만원 정도의 용차비를 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택배노조와 대형택배사들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택배기사들의 휴가를 보장하기로 한 것이다.
택배 없는 날은 광복절 전날인 8월 14일로, 배송기사들이 택배 없는 날에 이어 공휴일까지 휴가를 떠날 수 있도록 했다는 게 택배업계의 설명이다. 올해는 월요일이 택배 없는 날에 해당하면서 토, 일, 월, 화요일이 택배 휴무일이 됐다. 택배를 이용해야 하는 소비자들은 대체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목받은 게 편의점 택배가 된 셈이다.
편의점 택배의 가격경쟁력도 이용량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일반택배보다 저렴한 가격대와 고객의 주소를 밝히지 않아도 된다. 일반 택배사들의 기본운임은 동일구역 기준 소형(5kg 이하) 5000원 이상이다. CU 알뜰택배 이용료는 5kg 이하까지 1800~2700원이다. GS25 반값택배도 5kg 이하 물품에 대해 1800~2600원을 받는다. 근처 매장 운영 시간에 따라 24시간 접수도 가능하다.
중고거래가 대중화됨에 따라 개인 주소 노출을 꺼리거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고려해 편의점 택배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난 점도 이용량 증가에 주효했다.
동참 안 한 쿠팡·컬리도 반사익
택배 없는 날에 참여하지 않은 쿠팡, 컬리, SSG닷컴 등 이커머스들도 일부 반사이익을 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쿠팡 '로켓배송', 컬리 '샛별배송', SSG닷컴 '쓱배송'은 자체 물류를 통해 자체 배송기사가 상품을 배송한다.
실제 컬리의 경우 지난 13~15일 기간 전년 동기 대비는 15% 증가했고, 직전주 대비 매출은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이 기간 별도의 프로모션도 없었다. 컬리는 통상 평일에 주문량이 많고 주말이나 연휴에는 주문량이 줄어든다.
이번 택배 없는 날 기간이 일~화요일이었지만 전주와 비슷한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평소 기준보다 주문량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주문 상품군은 간편식 상품들이 주를 이뤘다. 쿠팡, SSG닷컴은 올해 택배 없는 날 기간(8월 13~15일) 배송 물량 증가율을 공개하지 않았다.
택배 없는 날 논란은 지속
이처럼 편의점 택배가 급부상한 가운데 택배 없는 날에 대한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택배업을 운영하는 쿠팡 등은 올해 택배 없는 날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기존 택배업체들이 날을 세웠다.
쿠팡은 지난 4일 쿠팡 뉴스룸을 통해 "쿠팡은 1년 365일 택배 없는 날, 쿠팡 배송기사의 ‘휴가 플렉스’"라는 게시물을 게재했다. 택배 없는 날을 지정할 당시부터 택배업계는 쿠팡 등의 온라인 유통업체들도 동참할 것을 요구했지만 쿠팡은 '365일 로켓배송 시스템임에도 퀵플렉서(배송기사)가 원할 때 쉴 수 있는 구조'라고 주장하며 택배 없는 날에 동참하지 않았다. 쿠팡 물류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의 퀵플렉스 대리점에는 위탁 규정에 따라 휴가자를 지원하는 백업 인력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국내 택배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은 배송기사들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택배 없는 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롯데택배는 "수년간 택배 없는 날이 지속되면서 배송 계획을 세워놓은 만큼 차질이 없었다"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시행한 만큼 앞으로도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택배 없는 날' 인지도 높이기에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0일 SNS 공식 계정에 택배 없는 날 관련 카드뉴스를 올렸다.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택배물량에 여름철 폭염·폭우 속 근무가 택배기사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택배 없는 날의 필요성을 안내하는 내용이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택배 없는 날은 배송기사들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노조와 택배사들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지정한 날이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며 "택배사들의 협조 여부에 따라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