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에 대해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밝힌지 2주만에 금감원이 기관전용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을 소집했다.
금감원은 단기이익을 추구하는 PEF의 운용전략으로 기업가치가 장기적으로 손상될 수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자 시장 일각에서 PEF 규제가 다시 강화될 수 있다는데 불안감을 표하고 있다.
이복현 원장 '고려아연' 발언 2주만에 PEF 소집
금융감독원은 12일 PEF 운용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소집해 비공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H&Q, 한앤컴퍼니, MBK파트너스, 스틱인베스트먼트, IMM PE, SKS PE, VIG파트너스, UCK파트너스, 스카이레이크, 스톤브릿지캐피탈, JKL파트너스, KCGI 등 10개 운용사의 CEO들이 참석했다. 이번 간담회는 당초 지난 주 열릴 계획이었지만, 비상계엄 사태로 일주일 가량 미뤄졌다.
감독당국이 PEF를 한자리에 불러모은 건 이복현 금감원장 취임 이후 두 번째다. 앞서 지난 2023년 1월 이 원장 주재 하에 PEF 운용사들을 소집해 간담회를 열었다.
금감원이 PEF를 불러모은 건 최근 이 원장이 영풍과 손을 잡은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를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 관점에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면서다.
이 원장은 지난 11월28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 회의를 마치고 백브리핑을 통해 "고려아연 인수 건은 과거에 문제 제기되지 않았던 부분을 저희에게 던져준다"며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당국이 고민해왔는데, 과연 금융자본의 산업 지배에 대해 고민이 많이 있었나 생각해봐야 한다"고 밝혔다.▷관련기사: MBK, 고려아연 인수 겨냥…'갑분' 금산분리 꺼내든 이복현 원장
PEF는 5~10년의 투자기간 동안 단기적 차익 창출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PEF가 인수한 기업의 알짜 자산이나 주요사업을 떼내 매각하거나 무리한 배당을 책정해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짚은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말 PEF는 총 1126개로 약정금액은 136조원에 이른다. 배당, 매각 등 투자회수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4.8년이다. "새로운 금산분리 관점서 PEF 책임 논의 필요"
금감원은 이번 간담회에서 PEF가 M&A 시장에서 갖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만큼 운용사가 가져야할 바람직한 역할과 책임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함용일 금감원 자본시장·회계 부원장은 모두발언에서 "비교적 단기 수익 창출이 목표인 PEF가 자칫 기업의 장기 성장 동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며 "PEF가 감독의 사각지대에서 대규모 타인자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존의 금산분리 논의와는 다른 '사모펀드 등 금융자본의 산업 지배'라는 관점에서 PEF의 바람직한 역할과 책임에 대해 논의의 물꼬를 트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운용사들은 주주환원 확대 투자문화 조성에 적극적으로 기여해 PEF 산업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일부 불건전 영업행위에 대해서는업권 전체의 신뢰 문제로 받아들여 개선 노력을 보이겠다고 했다.
'규제 강화되나' 불안감 번지는 업계
이번 간담회로 사실상 PEF 관련 규제 강화를 위해 발을 뗀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불안감이 감지된다.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PEF의 존재 목적자체가 산업체 인수인데, 거기에 문제가 있다면 PEF 역할이 모두 불법으로 취급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 기조를 3년만에 되돌린 것이란 불만도 나온다. 원래 운용사가 의결권 있는 주식 10%이상 보유하고 취득 후 6개월간 매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2021년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 이같은 운용 규제가 모두 사라졌다.
다만 일각에선 정부가 밸류업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국내기업들이 주주환원을 개선해야 한다는데 공감하기 때문에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PEF에 대해 규제 압박이 커지진 않을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또 다른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PEF는 펀드별로 전략을 다르게 쓰겠지만 궁극적으로 주주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금감원이 추진하고자하는 바와는 크게 다르지 않다"며 "이번 논의는 운용사가 투자 집행하는데 있어 어떤 개선점이 필요한지 살피고자 하는 취지로 이해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