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00억원에 영업이익 4억원, 순이익 2억원.
국내 세무법인 가운데 지난해 매출이 가장 많았던 11곳의 평균 실적입니다. 재무적인 수치만 보면 요즘 세무법인들이 많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세무법인들은 변함없이 장사를 잘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매출액 50억원을 넘은 세무법인은 34곳으로 전년보다 6곳이 늘어난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매출 상위권 로펌과 세무법인은 어디?
그렇다면 대형 세무법인들의 재무상태가 왜 이렇게 나빠 보이는 것일까요.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해 밑지고 장사하는 것도,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일부러 이익을 축소시키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죠. 알고 보니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 매출의 절반이 급여
세무법인들이 실적이 저조한 이유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한 대형 세무법인이 국세청에 낸 손익계산서를 들여다봤더니, 전체 매출액의 95%가 '판매비와 관리비' 명목으로 쓰였는데요.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바로 '임직원 급여'였습니다.
임직원들이 받아간 급여가 전체 매출액의 50%에 달했는데요. 지난해 삼성전자가 전체매출 200조원 중 직원 급여로 10조원(5%)을 쓴 점을 감안하면, 세무법인들의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이 10배나 더 높습니다. 세무법인의 최고 자산은 '맨파워'니까 급여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세무법인에선 이익이 많이 나더라도 구성원들이 가져가면 그만입니다. 한 세무법인 지점 임원의 얘길 들어보면 "내가 나가서 번 만큼 가져가고, 법인명 쓰는 값(수수료)만 본점에 조금 낸다"고 합니다. 회계법인 파트너 임원들이 이익을 유보하지 않고, 배당으로 나눠갖는 것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 쪼그라든 이익의 명암
세무법인에는 최고의 세금 전문가들이 모여있는 만큼, 남다른 '절세' 전략도 숨어있는데요. 어차피 이익이 많을수록 법인세만 더 내니까, 직원 급여나 복리후생비 등의 비용으로 이익을 줄이는 겁니다.
일반 회사들이 이익을 늘리기 위해 인건비를 아끼는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인데요. 상당수의 세무법인들이 이런 세무처리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세무법인 가운데 순이익이 10억을 넘은 곳은 예일세무법인(15억원)과 세무법인 다솔(14억9200만원)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진짜로 힘든 세무법인들도 많습니다. 매출액이 50억원을 넘는 상위 11대 세무법인 가운데 3곳은 순손실을 냈고, 4곳은 부채비율이 300%를 넘었습니다. 심지어 '자본잠식' 상태인 세무법인도 있었는데요. 이게 전국 세무법인 489곳 가운데 상위 2%의 성적표라는 점도 놀랍습니다.
하지만 납세자 입장에선 자신과 거래하는 세무법인의 재무상황이 어떤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매년 사업보고서가 공시되는 회계법인들과 달리, 세무법인의 재무정보는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그동안 '입소문'으로만 나돌던 세무법인들의 진짜 순위는 과연 어떨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