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단의 시기에 선택됐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상당히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다. 조만간 생각을 정리해서 발표하겠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강남권을 포함해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전반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규제 풀어 민생살리기 대토론회'에서다.
오 시장은 "급등세를 보였던 부동산 가격이 지난 2~3개월 정도 하향 안정화 추세에 접어들었단 건 많은 전문가 견해"라고 했다. 이어 "올해 들어서는 여러 경제 상황 때문에 부동산이 오히려 지나치게 하향 추세를 계속 보일 가능성이 있어 오히려 이를 경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발언은 강남구 도곡동에서 22년째 공인중개사로 일하고 있다고 밝힌 한 참가자 질문의 답으로 나왔다. 그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주변 토지거래허가구역과 관련해 "가격 폭등을 제어하는 순기능만 있는 게 아니라 풍선효과처럼 토허구역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포·성수 확대까지 생각한다더니?
토지거래허가제도는 부동산 가격 급등이 우려되는 개발 예정지 인근의 투기적 거래를 막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토허구역으로 지정한 곳은 주거·상업·공업 등 용도별로 일정 면적을 초과하는 토지를 취득할 때 사전에 시·군·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받은 목적대로 일정 기간 이용을 해야 한다. 아파트는 2년을 실거주해야 하고, 상가·업무용 빌딩은 4년 입주해야 한다.
지난달 20일 기준 서울시의 약 65.25㎢가 토허구역에 해당한다. 압구정과 여의도, 목동, 성수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국제교류복합지구(GBC)와 인근지역(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 일대), 강남·서초자연녹지지역도 토허구역이다. 용산구 일대는 국토교통부가 토허구역으로 지정했다.
대부분이 인근 대형 개발이나 재건축과 공공재개발, 신속통합기획 등이 추진되면서 토지(주택)시장 가격 급등 우려가 나타나자 지정된 곳이다. 그런 만큼 토허구역을 해제하면 재건축·재개발 투자 자금 유입, 갭투자 등이 부동산 급등세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서울시는 국지적 개발에 따른 부작용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는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불과 5개월 전만 해도 시는 토허구역 확대를 검토했다. 오 서울시장은 지난해 8월 기자설명회를 갖고 "신고가가 나오고 있는 지역에 대해 토허구역 확대를 깊이 검토하고 있다"면서 강남3구 전체를 대상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에도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관련기사 :수요규제 없던 8·8대책 뒤…서울시 "반포·성수 토지거래허가 검토"(2024년 8월 9일)
그러나 반년도 지나지 않아 태세를 바꾼 것이다. 시장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확신에 찬 모습이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4년 12월 전국 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아파트값 상승폭은 전월 대비 0.17%포인트(p) 둔화한 0.09%로 집계됐다. 일부 선호 단지 상승세가 있었지만 대출 규제 영향으로 매수 관망세가 이어진 영향이다.
토허구역 해제, 비정상의 정상화일까
일각에서는 토허구역의 시장 안정 효과가 미미했다고 주장한다. 규제 무용론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면적 84.80㎡C는 지난달 27억원에 매매 됐다. 2020년 6월 토허구역 지정 당시 22억5000만원에 팔렸던 물건이다. 래미안대치팰리스1단지 전용 84.97㎡A는 2020년 5월 30억3000만원에 거래됐으나 지난해 11월에는 39억3000만원에 팔렸다.
하지만 반포 등 토허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주거선호 지역 집값은 이보다 더 크게 뛰었다.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84.97㎡A는 2020년 5월 실거래가가 31억6500만원이었으나 지난달 53억원에 새주인을 찾았다. 토허구역 지정에 따른 '풍선효과'라는 해석이 나오는 지점이다. ▷관련기사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토허제'?(2024년 12월 22일)
최근 시장 분위기를 보면 토허구역을 풀어도 시장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오히려 "토허구역 지정 해제가 이뤄지는 게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김인만 소장은 "그동안 토허구역 지정으로 집값이 안정 되는 효과는 없었고 주택을 구매해서 실제 거주하려는 이들만 거래 과정에서 불편을 겪었다"면서 "구역을 해제하더라도 그 정도 가격대가 형성된 단지에 투기 수요가 몰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 랩장은 "단기적으로만 보면 토허구역 지정 해제 이후에 부작용을 우려할 시점은 아닌 거 같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재건축 활성화에 따라 일부 단지의 투기 수요 유입 가능성이 열려있지만 지금의 대출 규제 등을 고려하면 당장 그 가능성이 현실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수민 NH농협은행부 부동산전문위원도 "토허구역 지정 해제 이후 재건축 투자 수요가 늘어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시기적으로 재건축 시장이 위축됐고 시장의 충격이 크지 않을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비교적 억눌렸던 집값의 상승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고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김은선 직방 빅데이터실 랩장은 "현재 시장 상황에서 투기 수요 유입은 어려운 게 맞지만 토허구역 해제가 갭투자 등 투기 수요를 불러들일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토허구역 해제가 이뤄지면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선호도는 더욱 높아지고 강남 집값 상승으로 양극화 현상도 더욱 극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