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경제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나의 제품을 여럿이서 사용하고, 자신이 사용한 만큼만 비용을 지불하는 건데요. 차량 공유 플랫폼 '우버', 주택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 등 공유경제 서비스는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제품을 개인 또는 법인이 각자 구매해 보유하는 '소유경제'가 당연하게 여겨졌는데요. 대중의 소비 패턴이 소유경제에서 공유경제로 옮겨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낭비되는 비용이 적고 효율적인 소비라는 점이 가장 큰 요인이겠죠.
예를 들어, 수천만원짜리 자동차를 사더라도 차를 타는 시간보단 세워두는 시간이 훨씬 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만 운전하려는 소비자는 차량 공유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초기투자비용도 적고, 쓴 만큼만 돈을 내면 되니 효율적이죠. 차량 관리도 공유 서비스 업체가 알아서 해주니 소비자의 시간과 노력을 추가로 아낄 수 있고요.
◇ 소프트웨어도 공유경제로
앞서 이야기한 공유경제의 장점은 소프트웨어 업계에도 적용됩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SaaS(Software as a Service,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란 소프트웨어 판매 모델입니다. 여러 가지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SaaS 역시 클라우드 서비스의 일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클라우드 서비스는 크게 ▲IaaS ▲PaaS ▲SaaS 세 가지로 나뉩니다. IaaS(Infrastructure as a Service, 서비스형 인프라 시설)는 서버나 저장공간 등 IT 인프라 장비를 빌려줍니다. PaaS(Platform as a Service, 서비스형 플랫폼)는 인프라에 운영체제를 더해 프로그램을 운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빌려주죠.
SaaS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설치과정을 생략하고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가 있다면 웹에서 바로 작업하고, 그 결과물을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SaaS를 이용하는 데 익숙합니다. 네이버 메일이나 G메일과 같은 웹메일 서비스가 대표적인 무료 SaaS입니다. 이메일을 보낼 때 별도의 소프트웨어를 PC에 설치하지 않고도 웹사이트에서 직접 작성할 수 있죠. 받은 메일은 업체 서버에 저장돼 있고요.
◇ 왜 SaaS인가
SaaS는 소프트웨어를 단기간 사용하려는 예비 구매자에게 효과적인 판매 모델입니다. 프로그램을 며칠만 쓰면 되는데 통째로 구매하긴 쉽지 않습니다. 결국 프로그램 사용을 포기하거나 불법 다운로드의 유혹에 빠지는 사람이 많은데요. 하지만 하루 또는 일주일만 소프트웨어 사용권을 구매할 수 있다면? 효율성을 내세워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기 쉽겠죠.
또한 SaaS는 유지·보수·관리가 쉽다는 게 장점입니다. 패키지 판매나 다운로드 판매와 같은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유통 방식은 사후지원이 힘들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백신 프로그램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날 때마다 업데이트를 해주지 않으면 효과가 떨어집니다.
그런데 사용자가 직접 업데이트 파일을 설치해야 하니 굉장히 번거로웠죠.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용자는 접근 자체가 어려웠고요. 프로그램을 개인 컴퓨터에 설치해서 사용하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SaaS는 중앙 서버에서 직접 소프트웨어를 관리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일일이 업그레이드나 패치 작업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덕분에 장기간 수천 대의 직원용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운용해야 하는 기업 고객 역시 유지·보수·관리에 별다른 인력과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되니 편리합니다.
◇ 가파른 성장세 보이는 SaaS 시장
SaaS는 개인용 소프트웨어보단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더욱 활성화되어있는 판매 모델입니다. 이미 많은 기업이 ▲인력관리(HR) ▲공급망관리(SCM) ▲고객관계관리(CRM) ▲전사자원관리(ERP) ▲업무용 메신저 ▲보안 프로그램 등 다양한 B2B 소프트웨어를 SaaS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SaaS가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팽창하고 있습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지난 6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글로벌 SaaS 시장 규모는 122.6조원으로, 2021년에는 시장 규모가 189.2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시장 역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18년 한국 SaaS 시장은 3938억원 규모로 전년(3580억원) 대비 약 10% 성장했습니다. 2021년에는 시장 규모가 5133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여기에 정부가 올해 1월부터 공공·금융 분야에 클라우드 서비스 규제를 완화하면서 국내 SaaS 시장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구글은 지난 4월 연례 개발자회의에서 2020년 한국 데이터센터 건립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한국에 클라우드 서버를 두고 한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겠다는 겁니다. 아마존웹서비스는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는 2017년에 이미 한국 데이터센터를 구축했고요.
◇ SaaS를 대하는 우리 기업의 자세
글로벌 SaaS 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몰려드는 반면, 국내 기업들의 대처는 다소 더딥니다.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 중 글로벌 기업에 대항할 만한 SaaS 제품 기술력을 갖춘 곳은 더존비즈온, 영림원소프트랩 등 소수에 불과합니다.
이에 기존 소프트웨어 시장에 이어 SaaS마저 외국 기업에 종속될 것이란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SaaS는 이용권만 구매하면 되니 패키지 소프트웨어보다 도입이 쉽고, 한 번 도입하면 관련 업계 내에서 확산 속도도 빠릅니다. 그만큼 제품 종속도 빠르게 진행되죠.
글로벌 기업들도 처음부터 SaaS로 승승장구한 것은 아닙니다. 2010년대 초반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PC 사용자가 줄어들자 마이크로소프트의 PC 운영체제 '윈도우'의 매출도 급감했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며 과감한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뼈를 깎는 혁신의 결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4월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달성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특히 SaaS 시장에서는 엑셀, 파워포인트 등 킬러 앱이 포함된 '오피스 365'를 앞세워 지난해 글로벌 점유율 1위(17%)를 차지했습니다.
한국 소프트웨어 업계도 더이상 변화를 망설여서는 안됩니다. 전통적인 패키지 판매 위주의 비즈니스 모델을 서둘러 SaaS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의 정책 지원도 절실하고요. 우리 기업들이 미래 소프트웨어 산업의 향방을 결정할 중대한 전환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