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내 법무법인(로펌)은 얼마나 준비가 됐을까. 분야별로 차이가 크지만 인수합병(M&A) 법률자문 부문을 보면 아직 국내 로펌들은 갈 길이 멀다.
한국 로펌들은 국내 M&A 법률자문 시장에서는 외국법자문사법 등 법적 규제를 보호막으로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굵직한 딜에 참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4일 아시안리걸비즈니스(ALB)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 M&A 시장은 거래액 기준으로 중국, 홍콩, 일본 다음으로 컸다. 한국 다음으로는 중동, 인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순이다.
# 한국 로펌, 안방에선 선방
한국 로펌은 아시아계 다른 로펌들과 비교해 자국 M&A 법률자문 시장점유율이 높은 편이다. 지난 1분기 국내 대규모 M&A 거래를 이끈 톱10 로펌 명단에는 토종 로펌이 총 5개 오르는 등 영미권 다국적 로펌의 약진을 잘 막아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M&A 법률시장 자문 1위는 법무법인 광장으로 1분기 14건 거래에서 총 54억4070만달러 규모의 딜을 자문했다. 2위부터 4위도 모두 국내 로펌이었다. 법무법인 세종(33억6200만달러)에 이어 법무법인 태평양(28억9520만달러), 김앤장 법률사무소(23억3000만달러)가 '톱4'를 형성했다. 중견 로펌인 법무법인 지평도 2건의 딜에서 총 20만달러 거래를 이끌며 10위에 올랐다.
나머지 5~9위권을 차지한 영미권 로펌의 경우 거래액 규모가 도합 3억450만달러로 상대적으로 미미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국내 로펌의 이 같은 내수시장 내 실력 발휘는 인접 국가로까지 미치지 못했다. 김앤장과 광장이 1분기 중동 M&A 법률자문 시장에서 1건, 2건씩 각각 총 9610만달러의 거래를 이끌며 중동시장에서 공동 9위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 '법률 먹거리' 미국계 독식
M&A 법률자문 시장에서 '우물 안 개구리'식 경쟁은 아시아계 로펌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아태지역 주요 시장 8개국에서 아시아계 로펌들은 좀처럼 힘을 내지 못했다. 내수시장 수주를 제외하면 앞서 언급한 김앤장과 광장 외에 인도계 AZB앤파트너스와 아마찬드앤만갈다스가 싱가포르 M&A 법률자문 시장에서 각각 5위와 9위에 오른 것이 전부다.
1분기 8개 아태 지역 M&A 법률자문 시장을 장악한 곳은 미국계 로펌들이었다. 각국의 M&A 톱10 로펌 자리 대부분을 미국계 로펌이 꿰찼고, 평균 점유율은 절반(47.2%)에 가까웠다.
중국 M&A 시장에서도 중국계 로펌들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1분기 M&A 자문 실적 기준 로펌 톱10에 이름을 올린 중국계 토종 로펌은 팡다 파트너스가 유일했다.
세계 경제대국 2~3위인 중국과 일본이 모여 있는 아태 지역은 법률 서비스 부문에서도 먹거리가 많은 매력적인 시장이지만, 인접성과 비슷한 문화권 등 긍정적인 거래 여건을 누릴 수 있는 아시아계 로펌이 초라한 실적을 내고 있는 것이다.
# 외국계, 규모·경험에서 우위
M&A 시장에서 토종 로펌이 힘을 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국내 법조계 관계자들은 로펌 간 '실력 차이'를 지적한다. 규모나 경험 면에서 미국계 초대형 로펌에 맞서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로펌 관계자는 "국내 로펌은 상대적으로 이 분야에 늦게 뛰어든 데다 규모 면에서도 (영미권 로펌에) 한참 뒤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다만 올해 1분기 한국 로펌 2곳이 중동에서 선방한 것은 고무적이다. 중국과 일본 로펌도 이뤄내지 못한 실적이기 때문이다. 중동 M&A 법률자문 시장에서 공동 9위에 오른 법무법인 광장 관계자는 "꽤 오래 전부터 중동 법률시장에서 (광장이) 사업 토대를 다져온 것이 계기가 됐다"며 "다국적 로펌과 비교해 짧은 이력에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어와 문화 차이로 인해 미국계 로펌이 국내 법률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광장 관계자는 "영미권 초대형 로펌의 한국 진출이 아직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언어와 문화, 규제 등 전반적인 면을 고려할 때 국내 M&A 시장에서 해외 로펌이 빠른 시일 내 많은 거래를 따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무법인 태평양 관계자도 "현행 외국법자문사법 등에 근거한 개방에서는 외국계 초대형 로펌의 국내 진출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로펌들의 희망적인 전망과 달리 현실을 직시하자는 시각도 있다. 법무부 국제법무과 관계자는 "현행 외국법자문사법(의 보호 수준)은 계속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개방의 범위는 점차 확대될 수밖에 없어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