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서울 청약 불패'라는 말이 한풀 꺾이는 모양새입니다. 지난해 서울 지역 청약은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보였지만요. 부동산 경기 침체, 정국 불안으로 매수 관망세가 짙어지면서 당첨자들이 계약을 포기해 미분양을 남기는 분양 단지가 늘고 있어요.
공사비 증가에 따른 분양가 상승에 더해 시세에 비해 높게 매겨진 분양가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대출규제가 강화하고 생각보다 금리 인하 속도가 더디면서 '영끌(영혼까지 끌어와서 대출)'로 집을 사기에는 부담이 너무 커진 거죠.
서울 내 10대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들도 미분양이 쌓이면서 '무순위 줍줍'을 노리는 청약자도 늘고 있는데요. 하지만 줍줍이 흥행한다고 해도 실제 미분양 해소는 지켜봐야 해요. 무순위 당첨 뒤에 비로소 가격과 동호수를 확인하고 계약을 않는 경우도 많거든요. 이러다가 서울 미분양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건 아닌가 싶어요.
'서울 국평 = 14억?'…고분양가 부담
새해 가장 '핫'했던 미분양 단지는 작년 하반기 강북권 청약 최대어로 꼽혔던 '서울원 아이파크'예요. HDC현대산업개발이 총사업비 4조5000억원 규모 광운대역세권 개발을 통해 공급하는 단지죠. 최고 47층, 6개동, 1856가구 중 1414가구를 지난해 11월 일반분양했어요.
1순위 공급에 2만1219명이 몰려 평균 경쟁률 14.94대 1을 기록했어요. 하지만 전용면적 105㎡ 이상 중대형 16개 주택형 중 8개에서 청약 미달이 발생했죠. 2순위 모집에서도 일부 미달이 발생했고요. 전용 84㎡가 13억~14억원대, 112㎡ 이상 대형평수는 20억에서 최대 50억원에 달하는 가격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와요.
서울원 아이파크는 지난 8일 무순위(임의공급) 청약을 진행했는데요. 558가구 모집에 총 1만353명이 접수해 18.5대 1의 평균 경쟁률을 기록했어요. 분양가가 11억원대로 상대적으로 낮은 전용 74㎡에 청약자가 몰리면서 5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고요.
고분양가, 북향 등 평면 이슈로 일부 주택형이 일반분양에서 외면을 받았지만, 무순위로 청약 가능 범위가 넓어지면서 수요층이 몰린 것으로 보여요. HDC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펜트하우스 일부와 일부 대형평형을 제외한 대부분의 평형에서 계약이 완료됐다"며 "5배 수로 뽑아 추가 계약 미달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강서구에 위치한 '힐스테이트 등촌역'도 지난 13일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어요. 총 543가구 가운데 절반가량인 274가구를 일반분양했는데요. 지난달 6일 1순위 청약에서는 139가구 모집에 4960명이 몰리면서 35.7대 1의 평균 경쟁률을 기록했어요.
하지만 계약취소 물량이 늘면서 79가구 무순위 물량이 나왔어요. 여기에 3996명이 몰려 50.5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요. 분양가 11억원 대인 전용 59㎡ 2가구 모집에 1842명이 몰리면서 92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는데요. 77가구를 모집한 84㎡는 분양가가 14억원 중반에 달해 상대적으로 낮은 두자릿수 경쟁률을 보였어요.
중랑구 옛 상봉터미널 부지에 짓는 '더샵 퍼스트월드'는 현재 7호선, 경의중앙선, 경춘선, KTX 강릉선을 이용할 수 있는 상봉역이 가까운데요. 여기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B도 계획됐어요. 최고 49층, 4개동, 999가구 규모로 지난달 26일 800가구를 일반분양했습니다.
596가구 1순위 모집에서 5570명이 몰리면서 평균 경쟁률 9.3대 1을 기록했는데요. 전용 98㎡ 이상 중대형 평형에서 미달이 나왔죠 전용 84㎡ 분양가는 12억~13억원대, 98㎡은 14억~15억원 중반대였어요. 포스코이앤씨는 16일 정당계약을 마친 후 이달말께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다는 계획이에요.
서울을 조금 벗어나도 상황이 다르지 않아요. '안양-군포-의왕지역 대장 아파트 입지'라며 분양 판촉을 벌였던 평촌 '아크로 베스티뉴'는 지난 11월 1011가구 중 391가구를 일반분양했는데요. 1·2순위 217가구 모집에 1460명이 몰려 6.7대 1의 평균 경쟁률을 보였어요.
하지만 본계약 체결률이 42%에 그쳐 절반 이상 미분양 물량이 발생했어요. 전용 84㎡가 15억7000만원대로 주변 인근 신축 대비 3억~4억원 높게 책정돼서 41가구 모집 중 9가구인 22%만 계약을 완료했어요. 59㎡도 최고 10억원을 넘어섰고요.
'분상제' 빼고는…서울도 미분양 심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서울지역 미분양 주택은 931가구였어요. 특히 악성미분양이라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은 603가구로 2013년 10월(664가구) 이후 11년 만에 최대죠.
11월 지방 미분양은 5만652가구로 전월 대비 2.4% 감소했지만 수도권 미분양은 1만4494가구로 3.9% 늘었어요. 전국 미분양이 6만5146가구로 7월부터 감소세를 보이는 것과도 대조되는 모습이에요.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무순위 청약 등록 건수는 2023년 74건에서 지난해 106건으로 1년새 43% 증가했어요.
전문가들은 강남권 등을 제외하고 서울 내에서도 미분양 문제가 심해질 수 있다고 해요.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분양가상한제 외에 시세보다 비싸게 분양하는 지역들이 늘고 있어 서울 미분양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공사비 상승분보다 높게 분양가를 매기면서 전용 84㎡가 최소 13억~14억원으로 고정되는 모습인데, 가격 부담에 미분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어요.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한국은행이 16일 기준금리를 동결했는데 분양시장에도 영향을 크게 미칠 것"이라며 "높은 대출금리로 실수요자 자금 부담이 지속하면서 분양 수요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어요.
이어 "특히 중도금 대출 부담으로 분양계약을 주저하거나 연기하는 사례가 늘면서 미분양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공사비 상승으로 분양가가 상승하는 데 더해 금리동결로 수요가 억제되면서 분양가와 수요 간 괴리도 심화할 수 있다"고 진단했어요.
무순위 줍줍 제도 변경? "미분양엔 악영향"
한편 정부는 내달부터 무순위 청약제도 개편 방안을 내놓기로 했는데요. 무주택자, 해당 거주 지역으로 청약 자격을 제한하는 방안이 유력해요. 이런 제도 변경에 따른 미분양 시장 영향에 대해 전문가 의견은 엇갈렸는데요.
업계 한 전문가는 "제도개선 시 과한 쏠림현상 등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지금도 옥석가리기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무주택자, 거주 요건 등이 강화되면 이른바 던지기 청약, '선당후곰(우선 당첨 후 고민)'이 사라지고 오히려 실수요자 중심으로 주택공급 시장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도 "지역 우선, 무주택자 위주 무순위 접수가 강화되면 광풍이라 불릴 정도의 청약경쟁률이 다소 진정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양질의 무순위 물량이라면 지역거주자 당첨 확률이 다소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어요.
반면 박지민 대표는 "심각해지는 지방 미분양 문제 해소 정책과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이라며 "지방 미분양 해소를 위해 유주택, 고소득자에게 세제 혜택을 열어놓고 무주택자, 지역 한정으로 미분양 청약 기회를 좁히면 지방 미분양 해소는 어렵다"고 지적했어요.
이어 "지난해 동탄 롯데캐슬 줍줍에 300만명 이상이 몰려 청약홈 서버가 마비되자 이 같은 방안을 내놓은 건데, 흔치 않은 일을 막으려다 수백, 수천가구 규모 미분양 감소를 막는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덧붙였어요.